[ET시론]비대면 진료, 우리가 도착할 미래

[ET시론]비대면 진료, 우리가 도착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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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영화를 보면서 인류의 내일을 상상하곤 했다. 이미 고전 반열에 오른 '마이너리티 리포트' '가타카' '아이로봇' '토탈리콜' 같은 영화가 대표적이다. 이들 영화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고도로 발달한 의학 기술과 과학 인프라가 결합했을 때 어떤 일상이 전개될지를 흥미롭게 보여 주면서 우리에게 색다른 자극과 아이디어를 심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나 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일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단 한 번도 예측하지 못한 사건 때문에 어느새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변화 가운데 핵심은 '비대면'이 새로운 일상이 됐다는 사실이다. 학생이 공부하고 회사원이 일하는 건 학교나 회사에 가야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젠 각자 집에서 온라인 접속 한 번으로 해낼 수 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영역에서도 '비대면'이 안착하면서 의료 영역에서 비대면 진료의 도입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통해 전파되는 감염병의 특성상 환자를 비대면으로 진료할 수 있다면 감염병의 의료기관 내부 전파 위험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된다. 환자 입장에서도 굳이 병원을 찾아가지 않아도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당장 우리 사례를 보자.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된 이후 2년 동안 진료 건수가 340만건을 돌파했다. 비대면 진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의료기관 역시 꾸준한 증가세를 기록하며 1만4000개를 넘어섰다. 비대면 진료 도입 초창기에 서울과 종합병원 위주로 비대면 진료가 몰리면서 지방 의료기관과 1차 의료의 기반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오진과 약품 오남용에 대한 염려도 있었지만 오진은 없었고, 약품 오남용은 극소수의 불법적인 사례에 한정됐다. 비대면 진료 대다수가 고혈압·당뇨·고지혈증과 같은 만성질환이었고, 코로나19 감염에 의한 건수도 상위 5위에 들어 팬데믹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의 역할이 컸음을 알 수 있다. 국민 만족도도 매우 높아서 비대면 진료를 경험한 국민 가운데 85%가 다시 이용하겠다고 답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가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가 환자와 의료인 모두에게 효과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의료 현장 전반에 걸쳐)비대면 진료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성취가 있었다. 지난 대선 기간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입을 모아 비대면 진료를 공약한 이유 역시 이러한 성과에 기반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110대 국정과제에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전면 배치했다. 필자가 의료 원격 모니터링을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작년 9월에 대표 발의한 까닭도 같은 맥락이다.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는 세계에 우뚝 선 '정보기술(IT) 선진국 대한민국'의 명예와도 직결돼 있다.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과 촘촘한 인터넷망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지만 유독 비대면 진료와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는 아직 미진하다. 비대면 진료에 있어서만큼은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진 낡은 규제가 존재한다.

OECD 가입 38개국 가운데 비대면 진료를 규제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6개국뿐이다. 당장 중국은 5G 기술을 적극 활용해 베이징에 있는 의사가 3000㎞ 떨어진 환자를 수술하는데 성공했다.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의료시스템이라던 일본 역시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관련 규제를 완화했고, 현재 관련 서비스와 산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뒤처진 국내 비대면 진료 시스템, 어떻게 해야 제대로 도약하고 혁신할 수 있을까. 우선 규제 샌드박스 허용, 식약처의 소프트웨어 의료기기(특정한 하드웨어 혹은 하드웨어와 무관하게 설치해서 구동하는 의료목적용 프로그램) 지원 확대처럼 현행법 안에서 안정적으로 시행 절차를 밟아 온 서비스가 시장 확대의 길잡이가 되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비대면 진료에 실시간 의료 모니터링을 통한 질병 예방이 목적인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더할 수 있다면 국민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더욱 커질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산간이나 도서지방 격오지, 군부대 등 의료 취약지대가 있다. 의료 취약지가 아니더라도 만성질환자는 매번 같은 약을 처방받기 위해 병원을 찾아야 하고, 직장인은 감기나 미열 같은 가벼운 증상에도 병원 진료를 위한 반차·연차를 내야 한다. 육아를 위해 자리를 비울 수 없는 부모,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대면 진료 원칙' 때문에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 이제 국민 모두의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 미래를 향한 담대한 도전과 전환을 모색할 시기다. 국민의 의료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의료 편익을 증진하는 비대면 진료의 장점과 성취를 극대화하면서 혹시 모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든든하게 설계해야 한다. 애초 비대면 진료에 반발이 강했던 의료계 역시 이제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증진하기 위해 여러 생산적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듯 직역 이기주의에 얽매이지 않는 창조적 사고와 도전은 우리 의료서비스의 질을 더욱 높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국민의 일관된 신뢰와 협력에 힘입어 코로나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하면서 일상과 경제의 회복을 모색하고 있다. 참으로 많은 희생과 눈물을 요구한 시기였다. 이러한 위기는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당장 안도감에 젖지 않고 미래를 꾸준히 준비하는 국가만이 국민의 행복을 지킬 수 있다.

국회와 정부는 의료계, 산업계의 논의를 잘 종합하면서 좋은 제도를 설계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공공의료 강화와 의료서비스 접근권 향상이라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때다. 일찍이 소설가 윌리엄 깁슨이 이렇게 말한 바 있지 않은가.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자신문DB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자신문DB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kangbw89@gmail.com

<필자 소개>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민주당의 대표적인 차세대 정치인이다.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거쳐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 수행비서를 시작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참여정부 인수위를 거쳐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했다. 20대 국회의원 총선 서울 은평구(을) 지역에서 처음 당선됐다. 당시 당내 경선에서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본선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 최측근인 5선의 이재오 의원을 상대로 연이어 승리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국회 환경노동위원·운영위원·기획재정위원·보건복지위원을 지냈다. 문재인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 민주당 정책위원회 선임부의장을 거쳐 민주당 미래전환 K-뉴딜위원회 상임부위원장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