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는 세계 1위 수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와 인구수 대비 연구 인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기술이 사업과 창업으로 이어지는 혁신 성과는 투입 대비 매우 저조한 편이다. 지난 수년간 정부연구개발사업의 고질적인 문제로 연구의 성과가 혁신 동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른바 '코리아 R&D 패러독스'에 대한 지적이 있어 왔다. 정부 R&D 투자 규모가 30조원에 들어서며 국가 R&D의 양적 성과도 전반적으로 증가, 지난 10년간 세계 5위권의 특허 수를 유지하고 있다. 기술 사업화의 양적 성과라 할 수 있는 기술 사업화 건수, 기술료 징수 건수, 징수액 규모 등은 연평균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건당 기술료 수입이나 기술 이전율은 오히려 감소하는 양상이다. 원인이 여럿 있겠지만 정부 R&D 사업을 평가하는 성과지표로서 특허의 한계를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출원 또는 등록된 특허로 개발된 기술 수준을 가늠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기존 기술 대비 어떤 측면에서 특허가 됐는지 요인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특허만으로 개발된 기술의 수월성이나 혁신성을 평가하기에는 다분히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허의 본질적 목적에 대해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허권이란 기술 실시 허락에서 그 기술에 구현된 발명에 대해 독점적 배타권을 보장하는 제도다. 특허는 기술 이전이나 사업화에서 중요한 부분임은 맞지만 개발된 기술과는 별개의 사적 권리일 뿐이다. 많은 경우 개발된 기술의 일부 독점권이며, 대체 가능한 특허 기술이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등록된 특허라 해서 기술이 탁월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즉 개발된 기술의 요소기술에 대한 질적 평가지표의 하나로 특허를 활용할 수는 있겠지만 특허와 같은 지식재산을 개발된 기술의 기술적 성과와 동일시하는 오류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특허의 성과가 저조해도 상용화를 달성하는 우수한 연구개발 사업이나 기존의 문제를 해결한 기초 연구개발 사업 사례도 많고, 특허로 기술 노출을 꺼리는 기업도 많기 때문에 특허 획득의 실패나 특허의 양적·질적 수준으로만 기술 수준을 단정할 수는 없다. 직접적인 연구 결과물인 개발된 기술이나 콘텐츠, 인력 등과 구별해 특허는 지식재산으로서 연구 결과물에 수반되는 파생 성과 내지 포지티브 성과로 취급하는 것이 오히려 유연한 시각이다.
정부 R&D 성과 평가에 질적 평가가 강조되면서 특허의 질적 지표로 'SMART' 지표가 채용되고 있다. SMART 지표는 명확성, 측정 가능성 측면에서는 양호하지만 정부연구개발사업 성과를 제출해야 하는 시기와 특허의 출원·등록 기간 불합치 때문에 적절한 값 산출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국내의 경우 특허 심사 착수에만 평균 11.2개월이 소요되며(2020년 기준), 평균 심사 처리 기간이 11.1개월이기 때문에 등록까지는 대략 2년 정도가 소요된다. 미국의 경우 2년 6개월, 유럽의 경우 4~5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미리 준비해 둔 특허가 아닌 다음에야 연구개발사업 기간에 성과물로 제출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사업 기간 내 특허등록을 성과 목표로 잡는 경우가 늘면서 우선심사 제도를 활용하는 빈도가 늘고, 특허 등록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고속심사 절차를 이용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우수한 특허 획득에 반드시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장래의 기술 변화를 반영할 기회가 제한된다는 점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정부연구개발사업의 지원으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나 대학이 산출하는 특허의 대부분이 '장롱특허'라고 불리며 잠자고 있다거나 특허 이전율이 낮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획일적 양산에서 출발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말 중요한 것은 특허가 아니라 기술의 수월성과 기술혁신이다. 또 기술 발전과 진일보가 시장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세상을 변혁시키고 우리의 삶을 향상하는 원동력으로 선순환되게끔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출연연이나 대학뿐만 아니라 기업을 포함한 연구개발사업 참여자가 성과 평가나 기록에 매몰되지 않고 진정성 있는 연구와 개발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이규택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 신산업MD/알키미스트MD gtlee@kei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