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SW, 비용에서 가치로 점프

[ET시론]SW, 비용에서 가치로 점프

경제 불황과 기업 생존 노력

코로나19 여파가 끝나기도 전에 전쟁, 인플레이션, 경기 침체로 경제고통지수가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독일이 31년 만에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미국의 자이언트 스텝과 같은 기록적인 금리 인상과 각국의 긴축 정책, 세계 경제 성장세 둔화, 원유 가격 상승으로 장기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소프트웨어(SW) 기업과 산업 분야도 비대면 경제 활성화 및 디지털 전환에 대한 기대감이 존재하지만 낙관할 수 없는 현실이다.

기업 생존 부등식은 제품 가치 > 제품 가격 > 제품 원가로 볼 수 있다. 가치는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가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얻게 되는 효용을 의미하는 주관적인 기준이며 가격은 소비자가 제품으로부터 효용을 얻기 위해 지불한 화폐 금액, 제품 가치를 화폐 단위로 표시한 객관적인 기준이다.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가 고객이 지불하는 가격을 초과하고 고객에게서 받는 가격이 원가를 초과해야 한다.

한국 SW 기업 현실

한국 SW 기업은 어떠한가? 2022년 7월 12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기업분석 데이터베이스 S&P캐피털 IQ를 통해 세계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시총 100대 기업을 분석한 결과, 세계 100대 ICT 기업에 한국 기업은 2개(삼성전자 9위, SK하이닉스 56위)뿐이었다. 중국(9개), 일본(8개), 인도(4개), 대만(3개) 등 주변 경쟁국에 모두 뒤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조사는 한국 SW 기업 대부분이 영세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재는 통계치가 조사되고 있지 않지만 2016년 기준 패키지 SW 기업 매출별 분포도를 보면 연 매출 5억원 미만 기업이 31%, 10억원 미만 기업이 50%로, 영세 기업이 절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SW 산업 특징

일반 제조 산업에 비해 SW 산업은 개발 원가는 있으나 제조원가가 없으며 솔루션이나 제품과 함께 공급하는 SI는 완제품이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것이 아니고 특정 고객의 필요에 맞는 주문자 생산 방식으로 인한 SW의 복잡성을 내포하고 있다. 부가가치가 높은 지식산업에 해당하는 SW는 아직도 '단순 제품' '단순 용역'으로 취급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평가 기준이 없이 공급가격 그 자체만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SW 제값 받기는 지금까지 난제로 남아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SW 가치와 적정 가치평가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SW는 하드웨어(HW)와 불가분 관계로, 정부의 적극적인 HW 보급정책이 산업발전에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반면에 SW의 가치평가 시스템 미비와 여전한 불법복제로 적정한 보상과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이에 대한 정책과 제도 정비가 SW 산업 발전에 매우 긴요하다.

SW 가치평가 필요성

SW 산업은 지식집약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이자 기간산업, 라이프사이클이 짧은 산업에 해당하며 유지·보수가 중요하고 정부 정책 및 법 제도와 관련성이 큰 산업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최근 정책적으로 SW진흥법 개정을 통해 SW 기술금융 논의 및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되면서 SW 가치라는 관점에서 과거 실적보다는 '미래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늘어가고 있는 점은 긍정 신호로 볼 수 있다. 새롭게 나타난 기술금융 주요 사례로 제약 바이오 기업의 연구개발비 회계 처리와 데이터 기반 혁신기업 특별자금 등을 들 수 있다.

[ET시론]SW, 비용에서 가치로 점프

제약 바이오 분야는 7~8년을 투자해 2018년 '제약·바이오 기업의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관련 감독지침' 개정을 통해 개발비의 무형자산을 인정받고 있다. 신약은 임상 3상 개시 승인, 바이오시밀러는 임상 1상 개시 승인, 제네릭은 생동성 시험 계획 승인, 진단시약은 제품 검증 단계에서 자산화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데이터 분야는 디지털 뉴딜 정책에 힘입어 데이터 기반 산업 육성을 위해서 산업은행이 데이터 자산을 담보로 하는 '데이터 기반 혁신기업 특별자금'을 국내 최초로 출시했다. 부가가치 창출 기여도를 고려해 데이터 자산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데이터 가치평가 모델을 자체 개발하고 동 모델을 통해 산출된 데이터 가치를 대출한도에 연동해 자금을 지원한다. 데이터 가치평가기관 지정을 위한 제도적 준비까지 마쳤다.

반면에 SW 가치평가는 아직까지 요원하다. 그동안 데이터 혁신기업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구축한 데이터 자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데이터 산업 특성상 데이터 수집, 관리를 위한 초기 투자비용이 크고 사업화까지 장시간 소요되는 특성으로 인해 자금 수급 불균형이 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데이터 가치평가는 이러한 문제를 대폭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혁신의 두 축인 데이터 가치와 SW 가치가 함께 가야 한다. 제대로 된 SW 가치평가는 금융권에 제공 가능한 담보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평가된 SW 기술을 바탕으로 투자 활성화를 꾀할 수 있다. 또 기업 평가에 SW 가치가 반영돼 기업 회계에 있어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기업 경영의 중요요소로 자리매김하게 됨은 물론 궁극적으로 SW 가치평가는 SW 지식재산권을 금융자산으로 인식하게 되는 필수요소로 활용될 것이다.

기술 가치평가는 보이지 않는 기술을 숫자 또는 사업 언어로 그리고 재무적 언어로 보이게 하는 작업이다. SW 가치가 평가되면 SW 지식재산권 담보권 설정이나 기술투자 유치에 활용할 수 있다. 또 스타트업이나 영세한 중소 SW기업 성장에도 기여할 수 있다. 기술을 사고 팔거나 지식재산권을 현물출자할 때 적정가액 산정에 활용할 수도 있다. 아울러 소송이나 세무 문제, 기업합병이나 경영전략 수립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SW 가치 평가 조건

SW 가치 평가는 SW 지식재산권에 기반을 둔 사업화를 전제로 한다. SW를 통한 사업화 목적은 SW가 가지고 있는 재산권적 가치(지식재산권)를 바탕으로 SW를 활용해 판매량을 높이거나 적정 가격 책정의 기준으로 삼고 생산비용 절감 등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데 있다. SW 가치평가는 평가대상 기술이 최소한 하나 이상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판매하는 독립적인 사업 단위를 구성해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무형의 SW 자산은 다른 사업자산(business asset)과 결합돼 수익을 창출한다고 가정해 평가를 진행한다.

기술가치는 사업가치의 일부다. 사업가치는 기술과 그 외 금융자산, 유형자산 등과 같은 다른 자산이 결합된 것으로서 SW 기술가치는 사업타당성 평가의 전제를 바탕으로 SW가 활용됨으로써 증가한 사업가치와 SW 기술이 사업가치에 기여한 정도를 추정한 것이다. 다시 말해 SW 가치평가는 사업타당성 평가 결과를 계량화(정량화)하는 과정이다. 사업타당성을 입증하지 못한 상황에서 SW 가치를 정량화하게 되면 평가 신뢰성 확보 문제는 물론 평가를 진행하고자 하는 목적을 상실하게 될 수도 있다.

SW저작권협회 'SW 가치평가 모형'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는 제대로 된 자산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SW를 무형 자산가치가 있는 지식재산권으로 평가하는 한편, 금융 자금 조달과 투자 유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SW 가치평가 모형(모델)을 개발했다. 제조 분야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 기술가치 평가체계와 달리 SW 산업 특성에 맞는 요소를 적용해 SW가 미래에 어느 정도 수익을 올릴 수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SW 중심 지표를 만들었다.

가치평가 모델은 기술·권리·시장·사업요인 관점에서 SW 유용성·경쟁성·사업타당성 등으로 현금 창출 능력을 도출하고 이러한 평가 요소를 중심으로 SW 가치를 평가한다. 기술 수명(현금창출기간), 사업 위험(할인율), 기술 기여도(개별 기술 강도), 로열티율(증감률) 등으로 구성된 기술가치평가 공식 또한 SW 산업 특성이 반영된 인자를 투입함으로써 적정 SW 가치를 평가할 수 있게 된다. 평가된 가치는 금액 또는 등급으로 나타낼 수 있다.

SW 가치평가는 디지털 플랫폼 구현을 위한 필수요소

SW는 제품이 아니라 창작물로 지식재산권의 총합이다. 제조업과 달리 개발자 창작 역량과 활용성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에 무형자산 평가 관점에서 SW 기술 가치가 제대로 평가돼야 한다. 따라서 시장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SW 가치평가 시스템이 정착되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민·관이 함께 노력해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SW 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SW 개발자의 창작 성과를 인정하고 창작물인 SW가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문화와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 소프트웨어산업협회와 상용소프트웨어협회, 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 세 기관의 SW 가치 인정 업무 협약이 SW 산업 발전은 물론 디지털 혁신과 디지털 플랫폼 정부 구현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유병한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장 bhyu@spc.or.kr

<필자 소개>

유병한 회장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 후 인디애나주립대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쳤다. 대구대 법과대학 초빙교수, 가천대 법과대학 초빙교수를 거쳐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장과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콘텐츠산업실장으로 활동했다. 현재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장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