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디지털 창세기]〈7〉디지털 시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

[이상직 변호사의 디지털 창세기]〈7〉디지털 시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

서구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보자. 플라톤은 모든 물질에 이데아(본질)가 있다고 했다. 우리가 들고 다니는 가방의 모양은 제각각이다. 가방을 가방일 수 있게 하는 이데아는 물건을 담아 다닐 수 있는 것이다. 사람도 모두 각각 개성이 있다. 사람도 사람일 수 있게 하는 이데아로서의 이상적 인간이 있다. 어릴 때부터 '인간이 되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 결과 사람 각각의 개성이 부정되고 이상적 형태의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쓴다. 플라톤 시대엔 현실 세상을 가짜·허상으로 보고 진짜 세상의 이데아가 무엇인지 찾아야 했다. 세상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 물론 삶이 피곤한 이유도 된다.

중세에는 신이 이데아를 대체했다. 천국만이 진짜이고 현실은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하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아야 했다. 근대 철학자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이데아도 없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컴퓨터 가상공간은 아름답지만 진짜 현실 세상은 암울하다. 사람은 아무 이유없이 매트리스 속 지하동굴에 내던져진 존재일 뿐이다. 여기서 의존할 곳 없는 사람의 실존적 불안이 나왔다. 그러나 사람은 곧 각성해서 이성과 과학으로 현실을 가꾸기 시작했다. 신학자 장 칼뱅은 구원예정설·직업소명설을 바탕으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등 현실에 충실하면서도 신을 받들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설교했다. 바야흐로 이성과 과학 시대다. 사람은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고, 과학적 설명이 가능한 것만 믿는다. 이성, 과학, 자본주의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었다. 사람은 단순한 사회적 동물을 떠나 경제적 동물이 됐다. 폐단도 있다. 경쟁과 갈등 속에 사람은 돈이 되는 모든 것을 팔고 있다. 물건·지식을 포함한 각종 서비스, 황폐한 정신을 보듬는 자기계발 서적까지 끝이 없다. 인간성도 팔고 양심도 판다.

더 이상 팔 것을 찾지 못할 때 온라인, 모바일, 가상공간을 만들었다. 오프라인을 모방한 온라인 등 가짜 세상에서 상품·서비스 거래가 일어난다. 블록체인은 새로운 화폐를 창조했다. 가상인간·아바타가 모바일 앱, 메타버스를 통해 사람을 대신해서 행위 주체가 된다. 종이화폐가 금속화폐를 대체했듯 각종 페이(Pay)가 돈을 대체하고 있다. 미키마우스가 생쥐를 대체하고, 챗봇이 친구·연인을 대체하고, 복제품이 명품을 대체한다.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지식은 의식·감각 어느 하나에만 의존하지 않고 '몸'의 복합적 체험을 통해 얻어진다고 한다. 자기 몸을 만질 때 간지럼을 느끼지 못한다. 가족이나 연인이 만지면 즐거운 간지럼을 느끼고, 웃음도 나온다. 낯선 사람이 만진다면 불쾌감, 분노,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가 컴퓨터 화면을 통해 모나리자를 보는 느낌과 실제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모나리자를 보는 느낌은 다르다. 컴퓨터 화면 속 그랜드캐니언과 실제 그곳을 방문해서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로 다르다. 몸이 중요하면 몸이 인식하는 대상에 관심을 주기 전에 우리 자신에게 관심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디지털 시대엔 온라인, 모바일, 가상공간을 주로 눈으로 보고 느낀다. 시각이 주가 되고 청각이 돕는다. 실재하지 않고 가상으로 존재하지만 그 존재를 생생하게 느낀다. 그러나 현란한 세상, 급변하는 세상에 익숙해서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가. 있다. 오프라인의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반성·분발하기 위해서만 자신을 돌아보았다. 한 번이라도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나 자신보다 바깥 대상을 인식하기 위해 살아왔다. 잠자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활동하는 두뇌의 함정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 것인가. 평생 전원이 켜져 있는 기계처럼 살아온 우리 자신을 뒤돌아보자. 디지털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와의 아날로그적 소통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