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손에 잡히는 의료 데이터

“의료 마이데이터 시대가 열린다는 데 의무기록 사본 발급도 이렇게 어려워서야….”

최근 가족의 수술을 준비하면서 든 생각이다. 이전 진료기록과 수술내역을 제출하려면 기존에 다니던 병원을 직접 방문해서 의무기록 사본을 발급해야 한다. 환자 나이가 많거나 거동이 불편하다면 대리인 방문을 위해 환자 동의서가 필요하다. 직계가족이라면 가족관계 서류, 그렇지 않다면 위임장도 챙겨야 한다. 많은 환자와 그 가족이 겪는 불편한 현실이다.

정부는 지난달 28일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 이달 2일에는 '바이오헬스 신산업 규제혁신 방안'을 잇따라 발표했다. 두 방안 모두 의료 마이데이터 추진 전략을 비중 있는 과제로 다뤘다.

의료 마이데이터는 개인이 자신의 의료정보를 적극 관리·통제하고, 이를 개인 주도로 건강관리 등에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여러 곳에 분산된 개인 건강정보를 한 곳에 모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이를 환자가 주도적으로 의료진에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것도 포함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의료 마이데이터 구축 사업이 2021년 초부터 '건강정보 고속도로'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여러 의료기관에 분산된 개인 의료 데이터를 본인이 원하는 곳 어디로든 표준화된 형태로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중계시스템을 정부 주도로 구축해 왔다.

의료 마이데이터 시대가 오면 과거 진료기록 등을 활용한 정밀 진단과 의료 서비스 혁신이 가능해진다. 의료와 생활습관 데이터를 결합해 고도화한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나 돌봄 서비스 개발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개인 맞춤형 정밀의료라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더라도 환자가 과거 의무기록을 수술하는 병원에 바로 전송할 수 있는 수준으로의 서비스 진전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남은 과제가 적지 않다.

숫자로 이뤄진 금융 데이터와 달리 의료 데이터는 텍스트·이미지·영상까지 비정형 데이터로 구성된다. 병원마다 쓰는 용어·코드·장비도 모두 다르다. 이미 수년 전부터 의료정보 표준화를 시도했지만 진도가 쉽게 나가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다. 소유권과 보상 논쟁도 여전하다. 민감 정보라는 의료 데이터 특성도 어려움을 더하는 요소다. 건강정보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토지를 수용하고 지반을 다지는 일이 쉽지 않다. 정부의 의지와 함께 의료계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많은 한계에도 그동안 병원 서버에 갇혀 있던 데이터가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의료 마이데이터가 환자의 안전과 편의를 증대하는 서비스로 이어질 수 있도록 건강 정보 고속도로가 활짝 열리길 기대한다.

[ET톡]손에 잡히는 의료 데이터

정현정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