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법 개정에 발목 잡힌 토큰증권

김도형 핀헤이븐 대표
김도형 핀헤이븐 대표

올해 국내 주요 금융회사들의 신년사를 보면 거의 예외 없이 '토큰증권(ST) 등 디지털 분야를 육성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중점 전략에 포함되기도 하고 핵심 키워드가 될 때도 있다. 실제 여러 회사들이 토큰증권 플랫폼 구축에 거액을 선투자하며 시장이 열릴 때를 대비하고 있다.

문제는 입법이다. 분산원장 기반의 토큰증권 발행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전자증권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 또 토큰증권을 일반 투자자들이 사고 팔려면, 즉 토큰증권 유통을 위해서는 자본시장법 개정도 이뤄져야 한다. 두 법의 개정안은 지난해 여름 발의됐으나 아직 별다른 논의 없이 상임위에 계류된 상태다.

가지 않은 길을 나서는 건 언제나 두려운 일이다. 특히 당장 부족한 게 없는데 굳이 안개 자욱한 모험길을 나서야 하나 하는 생각이 발목을 잡는다. 그렇게 머무르면 실패할 위험도 없지만, 도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열매도 결코 맛볼 수 없다.

필자는 전 세계적으로 암호화폐가 쏟아지던 2017년 캐나다에서 핀헤이븐을 설립했다. 암호화폐에 대한 우려도 컸던 시점인데 우리는 블록체인의 쓰임새를 암호화폐보다는 금융 시스템 개혁에서 더 잘 찾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설립 다음해인 2018년엔 이더리움(ETH) 기반으로 3000만파운드의 채권 발행 PoC를 진행했고, 곧바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정부와 토큰증권 시장 개장을 위한 긴밀한 협의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이 채 안 돼 핀헤이븐은 캐나다 주요 6개주로부터 토큰증권을 발행, 유통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 현재 핀헤이븐 프라이빗 마켓을 4년째 운영해 오고 있다. 당시에도 앞에 놓인 길은 안개로 자욱했지만, 캐나다 정부는 금융혁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판단을 믿고 우리에게 허가를 내줬다.

지금의 금융 시스템은 거래와 투자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증권과 화폐의 보관 및 결제 시스템의 비효율성이 근본적 문제다.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은 이런 비용과 비효율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한국 정부를 비롯한 각국 정부가 적극 도입, 또는 검토하고 있는 중앙은행 전자화폐(CBDC)는 이런 점에서 금융 혁신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토큰증권도 마찬가지다. 토큰증권 거래를 시작하려면, 기술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 증권 거래 시스템에서 줄일 수 있는 단계와 절약할 수 있는 비용이 무엇인지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다. 펀딩은 생각도 못했던 상품들이 투자 대상으로 떠오르고, 조각투자처럼 방법도 다양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국가 간 투자 장벽이 낮아져 새로운 금융 허브가 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한국이 남들보다 이 길을 먼저 가길 바란다. 암호화폐가 가져온 폐해 때문에 많은 이들이 블록체인 기반이라고 하면 의심부터 한다. 그러나 암호화폐와 토큰증권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블록체인은 미래 금융의 핵심 기술이 될 것이다. 이정표가 명확하면 안개가 끼었더라도 길은 결국 목적지까지 우리를 안내해 줄 것이다. 그리고 길이 좁은 만큼 먼저 가는 사람이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할 것이다. 내 생각엔 그렇게 많은 시간이 남진 않았다.

김도형 핀헤이븐 대표 dh@finhav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