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 악화, 문제는 고령화 아닌 과잉진료

권정현 KDI 연구위원이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건강보험 지출 증가 요인과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KDI 제공]
권정현 KDI 연구위원이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건강보험 지출 증가 요인과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KDI 제공]

건강보험기금의 적자 전환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가운데 고령화로 인한 노인 인구 증가보다는 의원급 병원의 과잉진료가 건보 재정 악화를 유발한 것이라는 국책연구기관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건강보험 지출 증가 요인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건강보험 재정지출 증가를 주도하는 것은 가격 요인으로 외래서비스나 의원급 의료기관에 대한 관리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의료비 지출 비중은 2009년 5.9%에서 2022년 9.4%로 확대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 재정지출 증가율은 중앙정부 재정지출 증가율의 2배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1인당 의료비를 기준으로 지출 증가 원인을 분석한 결과 2009년부터 2019년 사이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 증가의 76.7%를 가격 요인이었다. 진료비 수량 요인은 14.6%, 통념적으로 건보 재정 악화의 원인으로 꼽히는 인구 요인의 기여도는 8.6%로 나타났다.

가격 요인을 서비스별, 병원 규모별로 나눠보면 외래서비스 가격 상승이 건보 진료비 지출 증가의 38.7%를 차지했다. 병원 규모별로는 1차 의료기관인 의원급에서의 가격 요인이 가장 컸다.

고비용 의료서비스로는 비싼 약제, 문재인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에 포함됐던 MRI 등을 꼽았다.

KDI 제공
KDI 제공

권 연구위원은 “불필요한 고비용 의료서비스 이용 및 과잉 진료에 대한 통제가 우선돼야 하지만 현재의 행위별 수가제 하에서는 의료서비스 공급자가 진료량과 진료행위를 스스로 통제할 유인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병원 종료별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의원급 의료기관이 상급 의료기관들과 경쟁하면서 과잉진료를 제공할 유인이 확대되고 있다”며 “의원급 의료기관의 가격 요인이 건강보험 진료비지출 증가의 주요 기여 요인이라는 사실은 의원급에 적용되는 행위별 수가제 체제 변화가 필요함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고령화에도 인구 요인의 영향력이 축소된 원인에 대해서는 '건강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고령층에 새롭게 진입하는 세대의 건강 개선이 이뤄지면서 65~69세에서는 수량 요인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권 연구위원은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후기 고령자로 진입하는 2030년 이후 여러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최다현 기자 da2109@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