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했던 소년공, 유일한 희망이었던 대학생 신분
이재명 신임 대통령은 1964년 경북 안동 예안면 도촌리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안동 삼계초등학교 졸업 직후 곧바로 경기도 성남 빈민촌 상대원 시장 꼭대기 월셋집으로 이사해 단칸방 생활을 시작했다. 돈이 없어서 중학교 진학도 포기했고 동네 형 이름을 빌려 13살부터 약 6년 동안 이름 없는 소년공으로 살았다. 법적으로 취업이 불가능한 나이였기 때문이다.
납·염산 등 화약 약품 냄새 속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렸던 소년 노동자 이재명은 결국 다섯 번째로 취업한 스키 장갑과 야구 글러브를 만드는 공장에서 프레스기에 왼팔 손목 관절이 눌리는 사고를 당했다. 왼팔의 성장판이 손상됐고 손목은 뒤틀려 평생 굽은 왼팔로 살았다. 사장의 야반도주로 월급을 받지 못한 일, 냉동회사에서 함석판을 접고 자르는 일을 하며 얻은 수많은 흉터, 아픈 손목을 붙잡고 공장 고참들이 강제로 시킨 권투시합에 참여한 일, 각종 구타 등 소년공 이재명은 약 6년여의 시간 동안 지문과 후각을 상당 부분 잃었고 각종 흉터와 장애를 얻었다.
그러나 소년공 이재명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공장 관리자가 돼야겠다'고 결심한 뒤 1978년 8월에는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1980년 4월에는 대입 검정고시도 통과했다. 결국 1981년 7월엔 공장 생활을 끝내고 대입 학력고사 준비에 매진했고 마침내 전액 장학금과 매월 생활비 20만원 지원이라는 혜택을 받고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생 이재명은 학창 시절 경험해보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아무도 입지 않았던 교복을 입고 대학 입학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생 이재명이 맞이한 현실은 참혹했다. 대학 교정에서 군사독재 횡포에 맞서는 학생들과 중앙도서관 외벽 밧줄에 매달려 구호를 외치고 유인물을 뿌리던 학생이 전경에 끌려가는 장면을 보기도 했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도들에 의한 반란으로 알고 있었던 그는 1982년에 우연히 유인물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접했다. 광주학살에 관한 사진과 비디오를 보고 비로소 참상을 마주했다.
하지만 대학생 이재명은 직접 학생운동에 투신할 수 없었다. 대학생 신분이 유일한 생명줄이자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가난과 부조리를 개혁하겠다고 다짐했다.

◈인권변호사·시민운동가 이재명, 교회 지하실에서 '정치'를 결심하다
마침내 그는 1986년 제28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노동·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사법연수원(18기)에서 당시 인권변호사였던 노무현 변호사의 강의가 큰 울림을 줬다. 생활비 걱정이 앞섰지만 노 변호사가 '변호사는 뭘 해도 굶지는 않는다'는 말에 용기를 냈다.
변호사 이재명은 1989년 성남에서 사무소를 개업했다. 1995년 성남시민모임(現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창립 구성원으로 참여하면서부터 시민운동가의 삶도 살게 된다. 특히 2003년에는 성남시 종합병원 두 곳의 동시 폐업으로 의료공백이 발생하자, 시민들이 값싸게 의료혜택을 볼 수 있는 공공의료기관 설립 운동도 시작했다. 결국 2004년 3월 성남시의회에 '성남시립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을 상정하는 성과도 거뒀다.
그러나 당시 새누리당이 장악한 시 의회에서는 아무런 토론 절차 없이 47초 만에 조례안을 부결시켰다. 시민단체 대표였던 이재명은 시의회에 강하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고발당했고 벌금 500만원도 내야 했다. 이재명은 성남의 한 교회 지하실에서 서럽게 울었다. '세상이 변하지 않으면 세상을 바꾸겠다'고 다짐하며 정치인의 길을 걷기로 다짐했다.

◈성남시장 이재명과 경기도지사 이재명
정치 입문 초기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2006년 성남시장 선거, 18대 국회의원 선거 등에서 연이어 낙선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2010년 51.2%의 득표율로 민선5기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성남시장 이재명은 '열린시정'을 표방했다. 당시 성남시는 6500억원이 넘는 막대한 부채 탓에 지방정부 최초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했지만 성남시장 이재명 당선 이후 3년 만에 재정 정상화를 달성했다. 특히 부채 상환과 동시에 복지를 강화하는 행정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2016년 6월에는 박근혜 정부의 지자체 재정 지원 축소 추진에 맞서 광화문광장에서 11일 동안 단식농성을 하기도 했다.
결국 국민은 성남시장 이재명을 이른바 촛불혁명 이후 치러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로 불러냈다. 비록 첫 도전에서는 경선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2018년 6월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20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당계 출신 경기도지사가 됐다.
경기도지사 이재명은 '새로운 경기, 공정한 세상'이라는 기조 아래 '공정-평화-복지'의 선순환 복지형 성장모델 구축에 힘을 썼다. △도민 1인당 지역화폐 10만원의 1차 재난기본소득 △경기도 계곡 내 불법업소 96% 정비 등이 주요 성과다. 이후 그는 성남시장·경기도지사 등을 거치며 선보였던 행정력을 바탕으로 마침내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선거의 최종 후보가 됐다. 그러나 본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패배하며 고배를 마셨다.

◈검찰의 압수수색과 부산에서의 테러
대선에서 패배한 뒤에는 제21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계기로 정치적 근거지를 인천 계양구을로 옮겼다. 중앙정치에 재 등장한 이재명은 2022년 8월 열린 전당대회에서 77.77%라는 득표율로 당대표에 취임했다. 당대표 이재명은 '대의원-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조절하고 전국대의원대회 명칭도 전국당원대회로 고쳤다. 공천룰 결정이나 당내 현안 등에 권리당원을 직접적으로 참여시키는 방안도 추진했다.
대 윤석열 정부 투쟁 선두에 서기도 했다. 당내 특위를 통해 해병대원 사망사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투기 저지,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 등의 진상 규명에 나섰다. 아울러 △간병비 급여화 △온동네 초등 돌봄 △3만원 청년패스 △경로당 주5일 점심 제공 등 민생 입법도 진행했다. 지난 22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헌정사상 최초로 야당의 압승이라는 성과를 거두게 된 이유다.
이후 당대표 이재명은 2024년 8월 18일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85.4%라는 역대 최고 득표율로 김대중 대통령 이후 최초로 당대표 연임에 성공한다. 연임에 성공한 당대표 이재명은 사회적 대타협의 기틀을 만들기 위한 제도 마련에 착수한다. 당내 정책 디베이트를 도입해 찬반이 크게 다른 이슈들을 피하지 않고 직접 다뤘다. △금융투자소득세 △상법 개정 △반도체특별법 주52시간 예외 적용 등이 대표적이었다.
아울러 '일하는 민주당'을 만들기 위해 힘썼다. △단통법 폐지 △불법고리대금 사채업자 근절을 위한 대부업·예금자보호법 개정 등을 이뤄냈다.배우자 상속세 폐지나 연금개혁 등의 이슈에도 실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정치적 위기도 있었다. 8개 수사부의 검사 60며명이 당대표 이재명과 그 가족, 주변들을 수사했다. 압수수색만 376회에 달했다. 당대표 이재명은 2023년 8월 31일 국정 쇄신과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며 24일간의 단식에 돌입했다. 이후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2023년 9월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재명에 대한 2차 체포동의안이 가결됐다. 하지만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지금도 이재명은 무려 5개의 재판을 받는 중이다.
2024년 1월 2일 부산에서는 실제로 습격당하기도 했다. 지지자로 위장한 테러범은 이재명의 목을 공격했다.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속목정맥 앞부분 65%가 손상됐고 9mm를 봉합했다. 끔찍한 정치테러였다.

◈12·3 비상계엄 해제를 이끌고 대통령이 되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당시 이재명은 즉시 유튜브 라이브를 켜고 “여의도로 모여 달라, 국회를 지켜 달라”고 호소했다. 결국 유혈사태 없이 비상계엄을 해제할 수 있었다.
당대표 이재명은 이후 12·3 불법비상계엄으로 인한 내란을 종식과 국정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삼성, SK, 현대 등 핵심 수출기업들과 직접 만나 현안을 논의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당내 AI특위를 설치하고 직접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미래 먹거리 육성을 위한 정책 마련에도 힘을 썼다.
결국 이재명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고 결국 이날 국민으로부터 대통령으로 선택됐다.
이 대통령은 비상계엄이 파괴한 민생경제와 국격, 국민의 삶을 회복하고 다시 성장을 복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공존·소통의 가치를 되살려 국민 통합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다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최기창 기자 mobydi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