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바이오·제약 기술수출이 처음으로 10조원을 돌파했다. 짧은 역사에도 신약개발 역량을 빠르게 확보, 우리나라 새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미국, 유럽 등 신약 선진국을 빠르게 뒤쫓고 있지만 격차 좁혀기가 쉽지 않다. 선진국은 이미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약개발 역량 확보에 국가 자원을 총동원,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신약개발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AI 투자가 시급하다. 부족한 신약개발 경험과 인재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국가 차원의 AI 신약개발 전략을 수립,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AI혁신, '성장' 아닌 '생존'
24일 서울 잠실 비워크 서울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디지털혁신포럼' 현장 간담회에선 신약개발 절벽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AI 활용은 생존을 위한 필수전략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통적인 신약개발 프로세스로는 시간과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만큼 AI로 단축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승규 바이오헬스 디지털혁신포럼 제약·바이오분과위원장(한국바이오협회 상임부회장)은 “전 세계가 AI를 활용해 혁신신약 개발에 나서고 있고, 우리보다 뒤처졌다고 평가했던 중국조차 이제는 추월했다”면서 “신약개발에 AI를 활용할 국가 차원의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정부가 국정 비전으로 'AI강국'을 내건 만큼 제약·바이오 분야에도 디지털혁신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전문가들은 냉정하게 우리의 신약개발 관련 AI 역량을 진단하고, 큰 틀의 로드맵을 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석차옥 갤럭스 대표는 “AI 신약개발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선 이 분야의 AI를 명확히 규정하고 관련 기술과 데이터, 문제와 해결방안 등을 명확히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면서 “신약개발이 다학제 복합영역이라는 특성을 고려할 때 다양한 영역에서 협업이 요구되며, 이를 관철하기 위해선 사회적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인산 에비드넷 대표는 “정부가 AI 신약개발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을 펼치고 있지만 세부기술이나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정부는 큰 틀에서 AI 신약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한 인프라, 규제 개선 등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버넌스·인재양성 병행해야
AI 신약개발 강국 도약을 위해 통합된 거버넌스 구축이 최우선 과제로 제시됐다. 현재 관련 예산과 지원사업이 부처별로 산재하다 보니 일관적인 비전수립과 체계적 지원 전략 마련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박준석 대웅제약 센터장은 “통합된 거버넌스를 통한 명확한 로드맵 수립, 실행과 관리, 성과 확산 등이 현재 가장 시급하다”면서 “거버넌스 통합은 산업에 일관된 메시지를 줄 수 있으며, 기업 투자 방향을 설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타 산업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인프라와 인재 양성 필요성도 제기됐다. 제약사들이 앞다퉈 AI 역량 확보에 매달리지만 인력 부족으로 프로젝트 수행조차 어렵다. 실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바이오헬스 기업이 느끼는 인재수급 불일치 영역에서 AI가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조인산 대표는 “AI는 제조, 국방, 통신 등 전 산업 영역에서 핵심 기술로 떠오르면서 인력 부족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면서 “제약, 바이오 분야는 타 영역과 달리 진입장벽이 높은데, AI 전문성이 있는 융합인재가 진출할 동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강재우 아이젠사이언스 대표는 “중국은 전통 제약뿐 아니라 AI 영역에서도 논문 발간이 우리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면서 “중국 정부는 신약개발을 위해 GPUI 등 IT 인프라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과 더불어 규제개선까지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뒤처지지 않으려면 신진 연구자 육성과 인프라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국회도 AI 신약개발 육성 한목소리
정부와 국회도 신약개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선 제도개선과 정책지원이 필요하다고 공감했다. 부처간 경계를 허물고 AI 신약개발 강국 도약을 위한 정책을 발굴하는 한편 기술 확보에 필요한 입법 지원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최수진 바이오헬스 디지털혁신포럼 공동의장(국민의힘 의원)은 “신약개발 AI 거버넌스 강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라며 “AI는 여야를 떠나 국가적 과제로 부상한 만큼 협치를 통한 발전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역시 “AI라는 거대 흐름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선 기술이나 사회변화를 미리 내다보고 걸림돌을 사전에 없애는 미래지향적 입법이 중요하다”면서 “발전 속도가 빠른 AI 특성을 고려해 연구자에게 도움을 주는 입법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고 덧붙였다.
민문기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산업기술팀장은 “바이오, 제약산업은 AI를 활용해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지만 많은 시간과 비용 문제로 스타트업 생존이 쉽지 않은 현실”이라며 “데이터 규제 개선과 전문인력 양성 등 다양한 지원책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