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반도체 인쇄회로기판(PCB)·첨단 패키징 판도를 흔들었다. 기존 서버 시장에서 국한됐던 AI용 PCB·패키징 수요가 모바일·정보기술(IT)까지 저변이 확대됐다. 스마트폰이나 PC 등 단말기에서 AI 연산을 직접하는 '온디바이스 AI' 성장에 따른 결과, 전방위적인 AI 대응 태세가 갖춰지고 있다.
한국PCB&반도체패키징산업협회 주최로 3일부터 사흘간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제 22회 국제 첨단 반도체 기판 및 패키징 산업전(KPCA쇼 2025)'의 최대 화두로 AI가 떠올랐다. 반도체 기판 무게와 크기를 줄이고 얇은 두께(박형)를 구현하는 동시에 성능을 개선하는 기술이 대거 등장한 것. AI 연산이 필요한 스마트폰과 PC·노트북 시장을 겨냥한 PCB·패키징 업계의 행보가 빨라졌다.
◇삼성전기·LG이노텍·심텍, 반도체 기판 '경박단소화' 총력

삼성전기는 임베디드 기판과 울트라씬코어(UTC) 기판을 전면에 내세웠다. 모두 AI 노트북이나 태블릿PC용 중앙처리장치(CPU)를 위한 패키지 기판 박형 기술이 적용됐다. 임베디드 기판은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칩 레지스터(전압·전류 제어) 등 수동 소자를 기판에 내장, 반도체 성능과 전력 소모를 개선할 수 있다.
UTC 기판은 미세 회로와 범프 기술로 기판(코어) 두께를 100~250마이크로미터(㎛)까지 줄였다. 현재 노트북용 CPU 기판은 1000㎛ 안팎의 두께가 많이 쓰인다.

LG이노텍도 기판 크기를 최대 20% 축소하는 기술을 KPCA쇼 선봉장으로 내세웠다. 기판에 작은 구리 기둥을 세워 그 위에 솔더볼을 올리고 메인보드와 연결하는 방식이다. 회사가 업계 최초 개발한 '코퍼 포스트(구리 기둥)' 기술로 구현했다. LG이노텍은 “열 전도율이 기존 납보다 7배 높은 구리를 이용해 발열을 개선했다”며 “고성능·소형화가 필요한 무선주파수 시스템인패키지(RF-SiP) 등 스마트폰용 반도체 기판에 최적화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심텍도 기판 경박단소화 경쟁에 가세했다. 유리 섬유에 수지를 침투시켜 만든 PCB 핵심 소재 'PPG'를 이용, 초박형 반도체 패키지 기판(Ultra Thin Substrate)을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저전력 DDR(LPDDR) 메모리나 시스템 반도체용 기판으로, 최근 온디바이스 AI용 반도체 시장을 정조준했다.
◇유리기판 기술 고도화 '현재진행형'…소부장 R&D 경쟁 치열
반도체 유리기판에 대한 관심도 여전히 뜨거웠다. 유리기판은 기존 플라스틱 소재 기판을 유리로 대체한 것으로 AI 서버 등 고성능컴퓨팅(HPC)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기·LG이노텍 등 기판 제조사들이 사업을 추진 중이다.
KPCA쇼 2025에서는 특히 기술 상용화를 위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계 R&D 성과가 돋보였다. 기판용 화학 소재업체 오알켐은 유리기판 핵심 공정인 '글라스관통전극(TGV)'의 구리 도금 기술을 선보였다. 유리기판에서 신호를 전달하려면 미세 구멍(TGV)에 구리 등 금속을 채워야 한다. 기술 난도가 높아 유리기판 업계 최대 난제로 꼽힌다. 오알켐은 최근 0.4㎜과 0.7㎜ 두께의 유리기판에서 안정적 도금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제4기한국은 유리기판 전용 스퍼터 장비를 개발, KPCA쇼2025에서 공개했다. 스퍼터는 유리기판에 매우 얇은 막을 증착하는 장비다. 미세 회로를 그리는데 필요하다. 회사는 현재 다수 유리기판 제조사가 시제품으로 활용하는 510×515㎜ 원장에 맞춘 장비를 구현했다.

PCB 미세 회로 구현을 위한 에스디에이 국산화 성과도 이목을 집중시켰다. 디지털 노광 엔진 기반의 '레이저 다이렉트 이미징(LDI)' 장비로, PCB에 레이저로 5·6·20·25㎛의 미세회로를 새겨넣을 수 있다. ◇韓 공략 나선 중국 PCB·패키징 기업들
한국 PCB·패키징 시장 문을 두드리는 중국 기업들도 관심을 받았다. 가격 경쟁력 뿐 아니라 기술에서도 한국 기업을 상당히 추격, 치열한 경쟁을 예고했다.
와이에스포테크는 PCB 양면에 동시에 노광이 가능한 30㎛급 LDI 장비를 소개했다. 연내 개발을 마치고 내년부터 양산 공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중국 중견 PCB 제조업체 준하오전자도 참가했다. 준하오전자는 월 10만 제곱미터(㎡)의 생산능력을 갖춘 회사다.

최시돈 한국PCB&반도체패키징산업협회장은 “최근 미국·중국·대만·일본 등 글로벌 반도체 산업 경쟁이 심화되고 밸류 체인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판·첨단 패키징 중요성도 부각됐다”며 “PCB·패키징 산업 발전을 위해 소통과 협력 필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이번 KPCA쇼가 우리 업계가 나아갈 방향을 함께 모색하는 중요한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