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글이 고정밀 지도 반출을 요청하며 보안 민감 시설에 대해 위도·경도 좌표를 삭제하겠다는 조치를 내놨다. 지난 2월 지도 반출을 요청한 후 언론이나 산업계·학계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던 구글이 약 7개월만에 처음으로 공식 자리를 마련하고 이 같이 밝혔다. 정부가 제시한 지도 반출의 핵심 사안인 국내 서버 설치에 대해서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구글코리아는 9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간담회를 열고 구글 지도와 관련한 계획에 대해 이 같이 밝혔다.
이번 간담회에서 구글이 내놓은 가장 큰 변화는 '위도·경도 좌표 삭제'다. 현재 구글 지도에서는 특정 지점을 클릭하면 해당 좌표가 표시되지만, 구글은 한국 정부 요청에 따라 이를 없애기로 했다.
크리스 터너 구글 대외협력 정책 지식 및 정보 부문 부사장은 “한국 정부 요청에 따라 민감 시설 블러 처리에 이어 좌표정보 제공도 중단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다”며 “이는 한국만의 특별한 조치이며, 이용자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기술적 검토와 투자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요청한 데이터 센터(서버)의 한국 설치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구글은 “지도 프로세싱은 전 세계 20억 명의 이용자에게 실시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글로벌 데이터센터에서 분산 처리해야 한다”며 “데이터센터 설립은 구글 지도와 직접 연관된 사안이 아니며, 여러 요인을 종합 고려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긴급 상황 발생 시 즉각 소통할 수 있도록 전담 책임자와 정부 전용 핫라인을 두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IT 업계에서는 정밀 지도 데이터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서는 한국 정부 행정력이 보장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를 충족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 중 하나가 국내 데이터센터 설치라 분석했다. 특히 구글이 주장하는 해외 서버에서의 프로세싱은 한국에 데이터센터가 설치된다면 충분히 로컬에서도 기술적으로 구현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 데이터센터를 설치하는 것과 해외 서버와의 프로세싱 연동이 기술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님에도 한사코 국내 데이터센터 설치를 거부하는 것은 법인세 회피 등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구글은 국내 파트너와의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구글 지도는 이미 티맵 기반 지도를 활용하고 있으며, 향후 지도 반출 승인이 이뤄지면 파트너십 범위를 넓혀 한국 공간정보 산업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계획이다.
간담회에서는 애플은 구글과 동일한 티맵 데이터를 활용하면서도 도보와 자동차 길찾기 기능을 제공한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에 대해 구글은 “서비스마다 구현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구글은 현재 한국에서 내비게이션과 같은 길찾기 서비스가 사실상 차단돼 있다. 전 세계 250여 개 국가와 지역에서 구글 지도 길찾기 기능이 작동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일부 국가와 함께 예외 지역으로 남아있다.
이에 구글은 '1:5000은 국내 길찾기 서비스 구현에 필요한 최소 단위'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아울러 구글이 반출을 신청한 지도는 국토지리정보원이 제작한 1:5000 국가 기본도로, 이는 한국 정부가 이미 민감한 군사·보안 정보를 제외하고 제공한 데이터라는 입장이다.
이날 구글의 발표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정부의 좌표표시 금지 조건에 대하여 수용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이나 국내서버 설치 등 사후보안관리 방안에 대하여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국가 안보 및 산업 등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반출 허용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손지혜 기자 jh@etnews.com, 변상근 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