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무역합의 교착…대통령실, “한미, 협상의 '영점' 맞춰가는 중”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며 함께 웃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며 함께 웃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양국이 관세 협상 후속 조치를 놓고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협상이 장기 교착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핵심은 미국이 투자금 회수 이후 수익의 90%를 가져가는 '일본식 이익배분 모델'을 한국에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대통령실은 양국이 서로의 주장을 통해 '영점'을 맞춰가는 중이라며, 국익을 우선한 신중한 협상 추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 12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급하게 미국으로 보냈지만 이견을 좁히는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경우 기존 무역합의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김 장관은 14일 새벽 인천공항을 통해 1박 3일간의 짧은 미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뉴욕에 머물던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만나고 돌아왔지만 협상 진전 여부에 대해선 “양자 간 협의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고만 짧게 답했다.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무역합의를 통해 한국이 총 3500억달러(약 486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대신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투자 구조와 이익 배분 등 세부 쟁점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핵심 쟁점은 △직접투자 비중 △투자 대상 선정권 △이익 배분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부담을 줄이고 보증을 확대하는 방안을 주장하지만, 미국은 직접 투자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투자 주도권을 두고도 미국은 자국이 결정권을 쥐려 하고, 한국은 기업의 자율적 사업성 검토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일본과의 무역 합의에서 도입된 '90%룰'을 한국에도 적용하려 하고 있다. 일본은 5500억달러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과정에서 투자처 지정권과 이익배분에서 불리한 조건을 수용했고, 이는 한국 협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농산물·디지털 무역 등 비관세 장벽 해소 문제, 최근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에서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이 체포됐다가 석방된 사건과 관련한 비자 제도 개선 문제도 관건이다. 러트닉 장관은 김 장관과의 만남 전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은 협정을 수용하거나 관세를 내야 한다”며 최후통첩성 발언을 내놨다. 협상이 교착될 경우 현재 15%로 낮춰진 상호관세가 다시 25%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경고다.

미국 현지에서 한미 관세협상 관련 후속 협의를 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4일 오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현지에서 한미 관세협상 관련 후속 협의를 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4일 오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우리 정부는 조급하게 최종 합의문에 서명하지 않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기자회견에서 이런 정부 기조에 힘을 실었다.

이에 따라 한미 간 무역합의도 크게 네 가지 시나리오가 전망된다. △한국이 미·일 무역합의 모델 일부를 수용 △투자 분야별로 부분 합의만 도출 △교착 상태가 장기화돼 관세가 원상 복귀 △정상 간 정치적 결단으로 협상을 마무리 등이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한미가 서로의 영점을 맞춰가는 중”이라며 “'국익 최선'이 이뤄지는 지점에 협상이 다다르면 국민께 알려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오는 23일 전후로 예정된 이 대통령의 미국 뉴욕 유엔총회 방문 등 외교무대를 계기로 협상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산업이나 경제 뿐 아니라 외교와 안보까지 고려한 협상이 필요하다”면서 “실무 협상안이 나온다고 해도 최종 결정은 양국 대통령의 몫”이라고 말했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 최호 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