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일론 머스크와 삼성 파운드리

대단한 기업이다. 소위 '넘사'라 불러도 할 말 없어 보인다. 첫 시도하는 첨단 공정에서도 치고 나간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TSMC 얘기다.

TSMC가 2나노미터(㎚) 공정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2㎚ 고객사가 이미 10여곳을 넘었다는 것이다. 출처는 반도체 장비사인 KLA다. KLA가 한 투자 행사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TSMC가 2㎚ 1세대(N2) 공정 고객으로 약 15개사를 확보했고, 이 중 10여개가 고성능컴퓨팅(HPC) 업체다. TSMC는 지난 7월 2분기 실적 발표에서 “N2의 초기 2년간 테이프아웃(Tape-out) 건수가 이전 세대인 3·5㎚를 능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삼성 파운드리는 어떨까. 2㎚ 준비에 열심이다. 전 세계 어떤 종합반도체(IDM) 회사도 선뜻 나서지 못한 최선단 공정이다(인텔은 2㎚를 건너뛰고 1.8㎚급으로 옮겨갔다). 파운드리 사업에 대한 진심, 진정성이 읽힌다. 그러나 아직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삼성의 2㎚ 공정 고객사는 자사 물량인 삼성전자 시스템LSI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가 첫 번째다. 과거 대형 고객이었던 애플, 퀄컴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삼성은 밑바진 독에 물붓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가뜩이나 대규모 투자에 따른 적자로 눈총을 받고 있는 곳이 파운드리다. 파운드리를 떼어내야 삼성 반도체, 즉 메모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러다 지난 7월 깜짝 소식이 들렸다. 테슬라가 삼성 2㎚ 파운드리를 쓰겠다는 발표였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협력 사실을 직접 공개했다. 테슬라 전기차의 자율주행 구현에, 그리고 휴머노이드 로봇에 필요한 인공지능(AI) 칩을 삼성이 미국에 짓고 있는 테일러 팹에서 양산하겠다고 했다. 머스크 CEO는 나아가 “나는 (칩 개발) 진행 속도를 높이기 위해 직접 현장을 찾을 것이며, (삼성 테일러) 공장은 내 집에서 멀지 않다”고 했다. 공정 개발, 칩 상용화를 지원하거나 관여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일론 머스크가 언급한 삼성 협력 내용
일론 머스크가 언급한 삼성 협력 내용

양사 협력은 일론 머스크 CEO의 제안으로 시작됐다는 후문이다. 세상에 없던 첨단 반도체를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제조 기술이 필요한 데, 이를 구현할 곳이 삼성전자 뿐이어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직접 연락했다는 것이다. TSMC가 세계 최고의 파운드리 회사지만 일론 머스크가 필요로 하는 차별화된 기술, 첨단 공정을 구현하기에는 폐쇄적이어서 보다 개방된 삼성전자와 이해관계가 일치했다는 분석이다.

진실은 양사 최고경영진만이 알 수 있겠지만 이 대목에서 변화의 가능성과 희망을 엿본다. 후면 배선이나 유리기판, 3D 적층 등 연구소에 머물러 있던 기술들을 테슬라와 삼성전자가 수면 위로 끌어 올려 세상에 없던 반도체를 만들어내면 '넘사벽'도 무너지고 '판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론 머스크가 그간 보인 혁신성이 삼성전자와 만나 시너지를 내면 파괴적 변화를 일으킬 것이란 관측에 기반한다.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테슬라와 삼성전자의 조우 자체가 관심과 흥분을 일으킨다. 기존 방식과 패턴을 따라서는 1등을 절대 뛰어 넘을 수 없다. 테슬라가 TSMC가 아닌 삼성전자와 손잡은 이유, 그 대목과 배경에 주목한다. 양사 협력의 결과가 세상에 없던 '혁신'을 낳길 기대한다.

2023년 5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회동한 모습
2023년 5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회동한 모습

윤건일 소재부품부 부장

윤건일 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