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에 대한 맹신은 금물이지만, 과학 연구 분야에서 기존에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데 있어 AI의 역할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높은 연구 역량에 AI가 힘을 보탠다면 국가경쟁력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장훈수 한국세라믹기술원(KICET) 연구혁신본부 AI융합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세라믹 소재 분야 디지털 전환(DX)을 위한 시뮬레이션·AI 기반 가상공학 플랫폼 구축의 일등공신이다. 가상공학 플랫폼은 소재 연구에서 제품 개발, 양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가상 시뮬레이션 AI 모델을 적용해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디지털 인프라다.
소재 산업은 신제품 개발 시 장기간의 반복 실험이 요구된다. 이는 곧 비용과 시간으로 환산되기 마련이다. 소재 관련 기업 입장에서는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고 건너뛸 수 있다면 이것만으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장 책임연구원은 “미세한 변화를 측정하고 기록하는 반복 실험은 그 자체로 양질의 데이터인데 가장 중요한 건 데이터를 표준화하는 것”이라며 “세라믹 소재 분야 전주기적 공정 장비를 구축하고 원료, 조성은 물론 제품에서 요구되는 특성 등 그동안 수집한 데이터가 10만건에 달하며 이를 표준화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탄생한 세라믹 소재 분야 가상공학 플랫폼 '벡터(VECTOR)'는 내년 웹 기반 서비스로 선보일 예정이다. 이미 세라믹기술원 내부에서 연구자들이 적극 활용하며 기초연구 단계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더해 가상현실(VR) 기반으로 실험실을 그대로 구현한 교육훈련 플랫폼도 선보일 예정이다.
산업 전반에 걸쳐 AI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일각에서는 범용 파운데이션 모델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특정 산업에 특화된 AI 모델이 우후죽순 생겨나면 생태계가 혼란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장 책임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막상 기업 현장을 가보면 같은 업종이라도 고도화를 필요로 하는 지점과 수준이 다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면서 “전문 분야별로 특화한 모델을 만들되 그 안에서 최대한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신뢰성도 가상공학 플랫폼 확산의 중요한 열쇠다. 장 책임연구원은 “소재 전문 기업에는 실험 과정이 곧 민감한 내부 데이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보안은 물론 산업 전반의 경쟁력 향상이라는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이 꼭 뒤따라야 할 것”이라며 “AI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며 당장 데이터 수집이 어렵다고 손을 놓고 있다간 나중에 도태될 수밖에 없는 만큼 한 걸음씩이라도 꾸준히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책임연구원은 학부생 때부터 박사과정까지 쭉 소재 분야를 연구해오다 포닥(박사후연구원) 당시 접한 시뮬레이션에 푹 빠져 AI라는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는 한 우물을 파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본인처럼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도 연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장 책임연구원은 “어떤 기업이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다 보면 제각기 다 상황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기 마련인데 문제점을 빨리 파악하고 해결책을 같이 모색하는 데 있어 그동안의 다양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면서 “새로운 소재의 등장이 산업에 미치는 파급력을 고려하면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AI와 함께 한다는 점에서 지금도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주=노동균 기자 defros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