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근의 대한민국 방산AI] 어디까지가 소버린 AI인가?

[전동근의 대한민국 방산AI] 어디까지가 소버린 AI인가?

우리나라가 전투기를 도입한 것은 1970년대 초반 F-4 팬텀과 F-5 제공호로부터 시작됐다. 이후 1990년대에는 F-15, F-16을 미국에서 도입했고, 그 과정에서 절충교역(Offset Trade)을 통해 항공산업의 기반을 다졌다. 이러한 기술이전 경험은 KAI가 T-50 고등훈련기를 개발하는 밑거름이 되었고, 결국 FA-50 경공격기와 KF-21 보라매로 이어졌다. 오늘날 KF-21의 국산화율은 63%를 넘어섰고, 50년 가까운 시행착오 끝에 대한민국은 비로소 '자국 전투기를 만드는 나라'가 되었다.

해군의 경우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1990년대 독일에서 장보고급 잠수함을 구매해 운용하던 대한민국 해군은, 이후 장보고-II, III 사업을 통해 설계·건조 능력을 키워왔다. 최근에는 미국과의 기술 협력을 통해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확보하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이러한 진화의 궤적은 '기계적 국산화'가 아닌, '축적된 기술주권(Sovereign Capability)'의 결과다.

그렇다면 AI와 소프트웨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대한민국은 '소버린 AI(Sovereign AI)'라는 거대한 담론 속에 있다. 정부는 국산 AI 생태계 육성을 강조하고, 각 부처는 앞다투어 “AI 내재화”를 외친다. 특히 국방 분야에서도 'AI Pilot', 'AI 전장관리체계' 등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국내에서 자체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 열풍 속에는 '소버린'이라는 단어가 자칫 '자급자족'으로 오해되는 지점이 존재한다.

기술주권은 '독립'이 아니라 '주도권'이다

소버린 AI의 본질은 단순히 “외국 기술을 쓰지 말자”가 아니다. 국가가 AI의 사용 방향과 활용 방식을 주도할 수 있는 주권적 통제력, 즉 'AI 주도권(AI Governance)'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AI는 하드웨어보다 훨씬 빠르게 발전한다. 미국의 OpenAI, Anthropic, Palantir, Shield AI 같은 기업들은 매년 조 단위의 투자를 받으며 AI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이런 시장 환경에서 한국의 중소기업이나 심지어 대기업이 동일한 수준의 모델과 생태계를 자체 개발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다면 방향은 명확하다. “AI를 새로 만드는 것”보다 “잘 만들어진 AI를 현명하게 활용해 국방체계를 고도화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마치 KAI가 F-16 기술이전을 통해 FA-50을 개발했듯, 이미 검증된 AI SDK(Software Development Kit)나 모델을 도입해 대한민국의 전장 환경에 맞게 재설계·적용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현명한 접근이다.

'AI도입=종속'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국방 분야에서는 보안과 망분리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인터넷 연결이 불가능한 폐쇄망 환경에서도 작동하는 온프레미스(On-Premise) AI 소프트웨어만 사용 가능하다. 이 점에서 해외 AI 기술을 사용한다 해도 '데이터 유출'이나 '정보 종속' 우려는 대부분 근거가 약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방산 AI 기업들이 제공하는 SDK 기반 AI 소프트웨어는 수출통제 규정을 준수하며, 사용국이 독립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SDK는 특정 무기체계나 플랫폼에 맞게 재개발이 가능하고, 개발된 지적재산(IP)은 국내 방산기업이 소유한다.

쉽게 비유하자면 이렇다. 2000년대 초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데스크톱에 설치된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로 논문을 쓴다고 하자. 그때 작성된 문서가 자동으로 마이크로소프트에 전송되거나, 저작권이 MS로 귀속되는가? 아니다. AI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온프레미스 환경에서 운용되는 AI SDK는 단순히 '도구'이며, 그 위에서 만들어진 성과물은 철저히 사용자, 즉 우리나라의 자산이다.

진짜 소버린 AI는 “AI를 다루는 사람과 체계”에 있다

진정한 소버린 AI는 '국산 알고리즘'보다 국산 운영체계와 인재 역량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외국의 AI 도구를 쓰더라도 그 도구를 이해하고, 수정하고, 재설계할 수 있는 기술적 통제권을 갖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방산 소프트웨어 생태계는 아직 'AI 오퍼레이터(Operator)' 중심으로 전환되지 못했다. 대부분의 R&D 프로젝트가 여전히 '개발자 중심'으로만 구성되어 있고, 실제 전장 데이터를 다루는 전문가와 연동되지 않는다. 전투조종사, 항법사, 정찰병 등 실전 사용자가 AI와 함께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야 한다.

AI 시대의 주권은 '코드를 누가 짰느냐'보다, 'AI를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마치 F-35를 사왔다고 해서 조종사가 없는 나라가 전투력을 갖출 수 없는 것처럼, AI도 단순히 모델을 만든다고 주권이 생기지 않는다. 운영하고, 훈련시키고, 우리 전장에 맞게 학습시킬 수 있어야 비로소 소버린 AI가 된다.

기술 독립이 아닌 전략적 자립

결국 소버린 AI의 방향은 기술 독립(Independence)이 아니라 전략적 자립(Autonomy)이어야 한다. 우리가 외국 기술을 사용하더라도, 그 위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주도적으로 전장 환경을 설계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자립이다.

KAI가 미국 기술을 기반으로 FA-50을 만들어 동남아·중동에 수출한 것처럼, 대한민국의 방산AI도 글로벌 AI 소프트웨어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국산 무기체계를 고도화하고, 나아가 해외 수출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단순히 “국산 AI를 만들어라”가 아니라 “전략적으로 활용 가능한 AI 생태계를 구축하라”로 전환해야 한다. 방산 기업과 스타트업, 대학 연구소가 함께 협력해 외산 기술을 흡수하고, 그 위에 대한민국형 전장 데이터와 임무체계를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AI 전략'이 필요하다.

소버린 AI, 이제 철학의 문제로 접근해야

AI 주권은 기술을 넘어 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단순히 누가 만든 기술이냐가 아니라, 그 기술을 통해 어떤 국가적 목표를 실현하느냐가 본질이다.

우리가 AI를 통해 추구해야 할 것은 '폐쇄적 국산화'가 아니라, '개방형 자주화(Open Sovereignty)'다. 기술을 닫아두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최고 기술을 끌어와 우리의 전장, 우리의 전투 개념, 우리의 임무철학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소버린 AI는 'Made in Korea'라는 라벨이 아니라, 'Controlled by Korea'라는 운영 철학에서 완성된다. 결국 AI를 통제할 수 있는 나라는, 기술을 만든 나라가 아니라 기술을 활용할 줄 아는 나라다.

전동근

대한민국 방산AI 스타트업

퀀텀에어로 이사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