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국민성장펀드 성공요건과 R&D 리더십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국민성장펀드의 성공은 기술 선도성장에 필요한 기술 역량을 알아보는 연구개발(R&D)전문성이 펀드 투자결정을 주도하느냐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기술 추격성장은 굳이 R&D전문성이 필요하지 않았다. 남이 만든 성공기술이므로 R&D 없이 정부와 금융기관 지원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선도는 추격과 전혀 다르다. 선도는 남이 하지 않은 새로운 기술이다. R&D전문성 없이는 제대로 투자할 수 없다.

R&D전문성이 투자자금 배분에 깊숙이 개입하는 사례는 미국 실리콘밸리다. 우리나라도 한때는 실리콘밸리를 생각하며 정책을 추진하던 때가 있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다. 6T(IT, BT, NT, ET, CT, ST) 과학입국 비전으로 벤처특별법과 기술이전촉진법 등을 제정했다. 과학기술 부총리제를 도입하고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통해 과학자가 처음으로 R&D예산 편성에 참여했다. 이런 노력으로 민주화 이후 20여년 동안 경제성장률이 평균 7~8%를 유지했다. 다만 이후 20년은 과학 홀대로 성장률이 하락했다.

국민성장펀드는 철저하게 기술 선도성장을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한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기관법상 23개 연구원을 대표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를 중심으로 산·학·연 전체 R&D역량을 모은 연구공동체를 조직해 선도적인 기술 연구와 자금지원 배분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과거 수출대기업을 중심으로 국가가 지원하던 방식은 추격형이지 선도형이 아니다.

둘째, 국민성장펀드로 조성한 자금의 배분은 정부가 직접 개입하거나 모태펀드를 거쳐 벤처캐피털에 일임하는 것이 아니라, NST 소속 각 연구기관이 자신의 R&D전문성에 기반해 스타트업을 평가하고 지원하도록 맡겨야 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NASA, DARPA, AFRL 등 정부 출연연구기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R&D공동체 평가를 기초로 자금배분이 결정된다. 엔비디아도 이들의 물적 및 금전적 지원으로 성장했다.

셋째, 벤처캐피털(VC)도 R&D공동체에 참여해 R&D평가 역량을 전문화하고 M&A를 통해 대형화해 선택과 집중으로 벤처기업 스케일업을 지원할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한다. 벤처투자시장은 전자증권발행으로 투명하게 관리되고 VC의 회수를 포함한 투자성과는 엄격히 공시돼야 한다. 전문성에 기초한 벤처투자시장 역량 강화 없이는 국민성장펀드로 지원하더라도 K엔비디아는 불가능하다.

넷째, 기업벤처캐피털(CVC)은 투자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으나 소유와 지배가 분리되지 않은 지배구조에서 외부자금 유치는 이해상충 여지가 있다. 이에 공시와 규제 대상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엔비디아, 구글 등 미국 주요 기업들의 CVC는 내부자금만으로 운용된다. 세제상 불리하고 증권법·투자회사법에 따라 SEC 규제 대상이 되기에 외부자금 유치 사례는 거의 없다. 또 혁신생태계 조성을 위해선 대기업의 협력이 중요하다. 상법 제397조 경업금지조항을 폐지하거나 적어도 지정 전략산업에 대해 면제해 대기업 R&D연구자 창업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 엔비디아도 AMD 등 대기업 R&D전문가들이 창업한 것이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jbkim@kif.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