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째 멈춘 '가상자산공개' 금지…해외 우회로 분쟁·피해 잇따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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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가상자산 발행 금지가 8년째 이어지면서, 가상자산공개(ICO) 규제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2017년 9월 사기 위험과 투기 과열을 이유로 ICO를 금지한 이후, 제도 보완 없이 규제가 유지되면서 국내 기업과 투자자 모두가 제도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ICO 금지로 권한과 자금 관리 기능이 해외 법인에 집중되면서, 프로젝트 운영권과 자금 통제를 둘러싼 분쟁이 반복되고 있다. 현행 규제에 따라 국내 기업이 토큰을 발행하려면 해외에 법인을 설립해 ICO를 진행한 뒤 국내 거래소 상장을 추진해야 한다. '테라·루나' 사태 이후에는 코인 발행뿐 아니라 프로젝트 운영 주체까지 해외에 있어야 국내 거래소 상장이 가능해지면서, 국내 기업의 제도 접근성이 제한됐다는 평가다.

팬텀코인과 보스코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팬텀코인은 규제로 인해 해외에 재단을 설립해 토큰을 발행했고, 이 과정에서 재단 설립자와 운영 권한이 해외 인사에게 귀속됐다. 이후 프로젝트 운영권과 토큰 관리 권한을 둘러싼 갈등으로 법적 분쟁을 하고 있다. 하지마 재단 대표가 해외에 체류하면서 수사가 장기간 지연되고 있다.

보스코인 역시 해외 재단과 국내 개발사 간 역할 분리가 분쟁으로 이어진 사례다. 스위스에 재단을 설립해 ICO를 진행했고, 해외 재단이 자금을 관리하고 국내 개발사가 기술 개발과 운영을 맡는 구조였다. 이후 자금 집행과 프로젝트 운영권을 둘러싼 이견으로 갈등이 표면화됐다.

정부 조사 결과, 국내 22개 기업이 해외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ICO를 진행했으며, 이들이 모집한 자금 규모는 5664억원에 달한다. ICO 금지 이후 발생한 가상자산 관련 범죄 역시 해외 법인 설립 과정이나 토큰 판매와 연관된 사례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주요국은 ICO를 제도권으로 편입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토큰화 금융을 규율 체계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고, 싱가포르는 발행 요건과 공시 의무를 전제로 한 규제형 ICO 모델을 도입했다. 일본 역시 토큰 발행 시장을 산업 차원에서 관리하는 제도를 구축하고 있다.

국내 정치권에서는 최근 디지털자산 관련 입법 과정에서 ICO 정책을 논의 중이다. 발행인 요건을 갖춘 기업에 한해 조건부로 ICO를 허용하는 방안, 또는 토큰 성격에 따라 증권형·비증권형으로 나눠 차등 규제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물론, ICO 허용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은 ICO가 구조적으로 고위험 자금 조달 수단인만큼 글로벌 시장에서도 다수 프로젝트가 사업 실패나 사기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토큰 백서의 허위 기재, 개발 중단, 자금 유용 등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ICO 논쟁은 단순 허용 여부를 넘어 가상자산 자금조달을 어떤 제도 틀에서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며 “정책 판단의 방향에 따라 국내 가상자산 산업 구조 자체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한다”고 말했다.

박두호 기자 walnut_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