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피지컬 인공지능(AI) 시대 핵심 인프라인 지능형 기지국(AI-RAN) 개발에 속도를 낸다. 초정밀·실시간 제어가 필요한 피지컬 AI가 구동하려면 기존 통신망 구조로는 한계가 명확해서다. 이를 위해서는 서버가 아닌 엣지단에서 연산·제어가 이뤄져야 하는데 기지국을 이를 위한 핵심 인프라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정영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네트워크정책과장은 최근 발표한 '하이퍼 AI네트워크 전략' 관련 기자설명회에서 “피지컬 AI에서는 대규모 AI 연산 능력과 200밀리초(ms) 이내의 초정밀·초근접 통신이 요구된다”면서 “기지국이 대용량 데이터를 실시간 송·수신할 수 있는 엣지AI 역할을 하는 것이 네트워크 진화의 핵심 과제”라고 밝혔다.
피지컬 AI는 로봇과 자율주행차가 주변 환경을 실시간으로 인식하고 즉각 행동해야 한다. 클라우드 서버로는 지연시간에 한계가 있고 온디바이스 역시 연산 성능과 전력 제약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근접한 네트워크 엣지에서 AI 연산이 실시간 수행돼야 한다.
AI 기지국으로 불리는 AI랜은 이동통신과 컴퓨팅 기능을 융합한 인프라다. 기지국에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탑재해 데이터 전달뿐 아니라 AI 추론과 제어 역할까지 수행한다. 정부는 내년 AI랜 기술개발에 90억원을 투자하고 2030년 6G 상용화에 맞춰 AI랜을 전국에 500개 이상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최성호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PM은 “피지컬 AI 시대에 우리나라가 글로벌 1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AI랜과의 연계가 매우 중요하다”면서 “로봇이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동작하려면 보고 듣고 이해해서 행동까지 연결되는 구간이 200ms(0.2초) 내에 이뤄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근접 기지국 엣지에서 컴퓨팅을 제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AI랜 생태계를 선도하는 기업은 엔비디아다. 노키아에서 10억달러를 투자해 AI랜 기술을 개발하고 T모바일과 협력해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랜 얼라이언스를 주도하며 전세계 통신사와 장비사를 끌어들이는 이유도 전세계 통신 기지국에 엔비디아 GPU를 탑재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도 삼성전자와 이통 3사가 엔비디아와 AI랜 공동연구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통신사 입장에서도 AI랜을 통해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 최 PM은 “퀄컴 기술인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을 우리가 최초로 이동통신으로 상용화했듯, AI랜도 엔비디아와 협력을 통해 제2의 CDMA 신화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과도한 엔비디아 생태계 종속은 경계한다. 엔비디아와 협력해 AI랜 시장을 열되, 중장기적으로는 NPU 등 국산 반도체로 대체 가능한 구조를 병행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최 PM은 “현시점에서 AI랜 시장 활성화을 위한 파트너로는 엔비디아가 가장 적합하다”면서 “다만 엔비디아 GPU 솔루션으로 AI랜 시장이 확산되면 결국 GPU 기반 기지국에 록인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궁극적으로 국산 NPU 대체 전략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기관도 이를 적극 뒷받침한다. IITP는 NPU 기반 기지국 개발 과제를 수행 중이며,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은 김포공항에서 AI랜 기반 5G 특화망 실증을 진행했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는 AI랜 표준화 작업을 주도한다는 구상이다.
박준호 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