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칼럼〉“고교학점제 문제 해소보다 새 교육과정 준비에 힘 써야”

진동섭 한국진로진학정보원장.
진동섭 한국진로진학정보원장.

모든 학생이 자신의 학습 역량이나 진로와 무관하게 같은 과목을 배우는 시스템이 학생에게 이로운가?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과거 방식으로 학습을 시켜도 학생은 미래 사회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나? 학교에 와서 잠만 자다가 시험은 백지를 내고 시간만 가면 졸업장을 주는 제도로 학생이 미래에 대비할 수 있게 교육할 수 있나?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한 교육과정은? 답은 1997년 12월에 고시한 제7차 교육과정이었다. 학생이 과목을 선택해서 배우는 교육과정, 교사는 학생이 학습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역할자로 방향이 설정되었다. 단지 출석 일수만 채우면 졸업하는 제도는 손을 댈 수 없었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는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면서 이전 단계에서 일정 수준까지는 도달해야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 이 세 가지 문제 중 어느 한 가지도 못 할 수는 있어도 안 할 수는 없는 과제이다.

학생이 과목을 선택하기 이전인 20여 년 전만 해도 문과생은 과학을 이과생은 사회(역사, 지리 포함)를 고3까지 꽤 많은 양을 배웠다. 2004학년도 수능까지만 해도 사회와 과학 과목이 모두 시험 범위에 포함되었다.

그러다 보니 과목 수도 많고 학습할 양도 많아 학생이 깊이 있게 학습하도록 지도할 수 없다는 반성이 뒤따랐고, 주5일제 도입과 함께 총 수업시수도 줄면서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학습하는 선택형 교육과정이 자리잡게 되었다. 20년 전인 2005년 베이징의 고등학교와 교류를 했는데 베이징의 모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은 “한국은 선택형 교육과정을 운영하는데 중국은 국가가 일방적으로 정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이 선진국”이라고 했었다. 그러다 중국도 곧 선택형 교육과정으로 전환했다.

제7차 교육과정 도입 초기에는 수업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당시 입시는 수능인데 수능은 수능형 문제 풀이 학습으로 대비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확대되자 학교 수업은 학생이 참여하는 학습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거꾸로 학습, 하브루타 방식 학습, 탐구하고 발표하는 학습, 토론 학습과 함께 논·서술형 시험이 확대됐다. 이후 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라는 문제가 제기되었고, 2019년 주요 대학의 정시 선발 비율을 2014 대입까지 40%로 확대하도록 하자 교실 수업 개선은 추춤한 상태로 보인다.

[에듀플러스]〈칼럼〉“고교학점제 문제 해소보다 새 교육과정 준비에 힘 써야”

일정 수준에 도달해야 이수를 인정하는 제도는 도입해야 할 당위성은 있는데 실행 단계에서는 어려움이 많다. 교육강국이라는 핀란드만 해도 졸업 시험이 있고 성적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한 학년을 더 다녀야 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이런 제도를 우리가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우리 문화와 정서에 맞는 정책을 만들면 고교학점제 논란은 가라앉을 것이다.

고교학점제는 2017년에 문재인 정부가 내세웠는데, 그 이전 박근혜 정부가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이라며 개정한 2015 개정 교육과정이 고교에 도입되는 2018년이 되기도 전에 준비된 교육과정 제도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도 선택형 교육과정이고 수업 개선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고교학점제와 다름이 없다.

제7차 교육과정 이후 교육과정은 모두 이 두 가지 방향에서는 일치한다. 한편 일정 수준에 도달해야 수강 인정을 받게 된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 과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모든 학생이 일정 수준 이상의 학습역량을 갖추도록 교육하면서 일부 학생의 학습 부진을 해소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수월성 교육도 같이 지원하는 정책이 유·초등부터 실행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부족한 부분은 무엇일까?

어쩌면 교교학점제를 보완하는 일보다 새 교육과정을 준비하는 일이 더 시급할지 모른다. 우리나라 교육과정 개정은 사회의 변화에 앞서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이 고시된 뒤 2011년에 스마트폰이 일상이 되는 시대가 되었고, 2015 개정교육과정이 고시되고 그 해 알파고와 이세돌 기사의 대국이 인공지능 세상을 일깨웠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을 고시하자 세상은 챗GPT 광풍에 휩싸였다. 앞으로 머지않아 AGI 시대가 온다고 하고 양자컴퓨터 시대가 열린다고 하는데 미래를 예견하고 그에 대비하는 한발 앞선 앞 선 교육과정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진동섭 한국진로진학정보원장

◆진동섭 원장은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교육부 교육과정심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이사와 교육부 교육과정심의회 위원을 역임했으며, 서울대 입학사정관과 서울교육청 진학지도지원단 운영위원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