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진짜 AI 혁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정영훈 엑스엘에이트 창업자·대표이사
정영훈 엑스엘에이트 창업자·대표이사

5년 전만 해도 요원해 보이던 자율주행이 성큼 일상으로 들어왔다. 필자가 사는 실리콘밸리에서는 운전석이 텅 빈 차가 도로를 달리는 광경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테슬라를 필두로 한 감독형의 완전 자율주행 서비스, 구글 '웨이모'나 '죽스'와 같은 플랫폼 기반 자율주행 택시가 공존하는 도시가 됐다. '자동차는 운전자가 운전석에 앉아 운행해야 한다'는, 100년 넘게 당연하게 여겨온 전제가 지금 눈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필자는 올해 초 자율주행 차량을 구매했다. 물론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직진해야 할 상황에 좌회전 차선에서 대기하거나, 이유 없이 차선을 바꿨다가 돌아오는 등 갸우뚱하게 만드는 순간도 있다. 그럼에도 전반적인 주행은 평균적인 인간 운전자보다 부드럽고 안정적이다. 재보험사 '스위스리'에 따르면, 자율주행 시스템의 사고율이 인간 대비 90% 낮다고 한다. 실제로 최근 웨이모의 자율주행 차량이 산타모니카에서 어린이 보행자와 약 시속 9㎞ 정도의 속도로 충돌한 사고가 있었다. 웨이모 측 분석에 의하면 만약 사람이 직접 운전하는 상황이었을 시, 매우 집중력 있게 운전했더라도 시속 22㎞ 수준이라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다. 이는 인공지능(AI)이 자율주행이라는 문제를 '상용화 가능한 합리적 수준'까지 풀어낸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AI가 만들어가는 더 많은 혁신은 이런 눈에 보이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용자에게는 기존과 동일한 서비스처럼 느껴지지만, 그 내부에서는 AI가 이미 업무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거나 고도화한 결과다.

골드만삭스 같은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AI를 활용해 보다 정교하고 빠른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디지털 뱅킹 플랫폼 '마커스'는 AI 기반 포트폴리오 관리와 개인 맞춤형 금융 계획을 제공하며, 실시간 시장 데이터와 경제적 이벤트를 즉각 반영해 고객에게 최적화된 투자 솔루션을 자동으로 제시한다. 과거 인간 트레이더가 수행하던 시장 분석과 예측을 AI가 더욱 정밀하게 처리하면서, 사람은 더욱 전략적인 판단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의료 분야에서는 AI가 정밀 의학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템퍼스 같은 AI 헬스케어 기업은 대규모 의료 데이터에 기반해 환자 맞춤형 치료를 제시하고, 유전자 데이터를 분석해 개별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 계획을 추천한다. 실시간 진단 결과 전달로 의료진의 의사결정을 돕는 이 시스템은 이미 현업에서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물류와 제조업에서는 AI가 공급망과 생산 라인을 최적화하며, 로보틱스와 자율주행 기술을 결합해 작업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다. BMW 같은 기업은 AI 로봇으로 부품을 정확하게 운반하고 생산 공정을 자동화해 비용을 절감한다. 가트너에 의하면, 물류·제조 분야 기업의 60~95%가 AI를 도입했고, 그 절반 이상이 의미 있는 성과 향상을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AI 스타트업도 그 변화의 한가운데 있다. 미디어 콘텐츠 현지화 분야에서 기존에는 100% 수작업으로 이뤄지던 공정의 절반 이상을 AI로 자동화했다. 통역 부스에서만 가능하던 동시통역 역시 AI를 통해 참가자의 스마트폰에서 개인화돼 전달되는 방식으로 진화해, 글로벌 컨퍼런스 현장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다양한 산업과 서비스를 움직이는 동력이 AI로 교체됐다.

AI 혁명은 전례 없는 속도로 진행 중이다. 회의와 작업 환경을 바꾸고, 사람들의 업무 방식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며, 일상적인 서비스 속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혁신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인류의 발전은 그동안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져 왔지만, 지금의 AI 혁명은 그 속도마저 뛰어넘는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혁신과 눈에 보이지 않는 체질 개선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지금, 인류는 머지않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의 자율주행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AI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 이미 그 미래를 운전하고 있다.

정영훈 엑스엘에이트 창업자·대표이사 tim@xl8.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