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욱의 AX시대의 고객경험] 〈8〉 AI의 '답' 뒤에 놓여진 브랜드들

전상욱 HSAD 디스커버리센터장
전상욱 HSAD 디스커버리센터장

최근 커머스 시장 지각변동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두 가지 핵심 기술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 업계에서 각각 UCP(Universal Commerce Protocol)와 ACP(Agentic Commerce Protocol)로 설명되는 구조가 그것이다. 엄밀히 말해 이 둘은 제미나이와 챗GPT라는 각기 다른 생태계에서 발전하고 있는 기술적 접근 방법이지만, 브랜드 입장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데이터 중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먼저 구글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UCP 흐름은 파편화된 전 세계의 상품 정보를 인공지능(AI)이 즉각 읽고 해석할 수 있도록 데이터 구조를 단일화하는 '정보의 표준'을 지향한다. 오픈AI를 중심으로 논의되는 ACP는 AI 에이전트가 인간을 대신해 결제와 계약을 수행할 수 있도록 보안과 인증 절차를 규격화하는 '거래의 표준'을 목표로 삼았다. 제미나이가 UCP적 구조를 통해 상품을 '이해'한다면 챗GPT는 ACP적 구조를 통해 상품을 '구매'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결국 브랜드가 가진 서사를 지우고 오직 '비교 가능한 데이터'만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브랜드에게는 '탈 브랜드화(De-branding)'라는 치명적인 위기를 불러온다고 할 수 있다. 브랜드가 가진 고유한 서사나 디자인적 감성, 매장에서의 특별한 경험은 UCP와 ACP라는 거대한 데이터 규격 안에서 '비정형 노이즈'로 분류돼 삭제되기 쉽다. AI 에이전트에게 브랜드는 이제 인격적인 실체가 아니라, 가격, 소재, 배송일자라는 숫자로 치환된 '데이터 조각'일 뿐이다. 소비자가 브랜드의 로고를 확인하거나 상세 페이지의 감성적인 문구에 감동할 틈도 없이 구매가 종결되는 효율의 시대에 브랜드는 자신의 이름을 잃어가는 실존적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하는 심리적 동인은 인간의 본능인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 성향이다. 정보 과잉의 시대, 소비자는 스스로 정보를 대조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데 드는 인지적 비용을 감당하기보다 AI가 제공하는 인지적 지름길을 선택한다. 여기에 AI 특유의 확신에 찬 어조가 주는 권위 편향(Authority Bias)이 더해지면서 AI의 답변은 정답으로 각인된다.

그렇다면 마케팅은 이 차가운 알고리즘의 지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이제 AI가 우리 브랜드를 단순히 데이터로 인용하게 만드는 전략(GEO)만으로는 부족하다. 소비자가 인지적 나태함을 깨고 AI에게 '반드시 그 브랜드를 찾아줘'라고 특정해 명령하게 만드는 브랜드 서사의 복원이 절실하다. AI는 정보를 요약하고 프로토콜을 처리할 수는 있지만,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망의 대상'을 스스로 창조할 수는 없다. AI가 쉽게 파편화할 수 없는 강력한 원형적 경험을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제공함으로써 브랜드의 실재감을 설계하고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AI가 예측 가능한 추천 프로세스 속에 브랜드만의 고유한 감각적 놀라움을 심어, 소비자가 알고리즘의 관성에서 벗어나 브랜드를 다시 '발견'하게 유도해야 한다. 기술이 인간의 생각을 대신해주는 시대일수록, 역설적으로 소비자가 다시 스스로 생각하고 싶게 만드는 가치를 제안하는 브랜드가 승리한다. 기술이 충돌하는 복잡한 환경일수록, 브랜드가 직접 제공하는 투명하고 검증 가능한 원천 데이터는 그 자체로 강력한 신뢰의 인프라가 된다.

결국 질문은 소비자가 하고 답은 AI가 뱉어내지만, 그 답의 주인공이 누구여야 하는지 결정하는 최종 권한은 여전히 소비자의 마음에 있다. 인공지능전환(AX) 시대의 마케팅은 UCP나 ACP라는 프로토콜에 우리 브랜드를 잘 끼워 넣는 기술적 작업을 넘어, 기술이 제공하는 편리함에 안주하려는 소비자의 뇌를 일깨워 오직 그 브랜드여야만 하는 이유를 스스로 묻게 만드는 고차원적인 심리전이다. 브랜드가 이름 없는 데이터 조각으로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소비자의 삶을 이끄는 서사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 모든 것이 데이터로 환산되는 2026년, 마케터의 사명은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인 서사를 통해 기술 너머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있다. AI의 완벽한 대답조차 대신할 수 없는 브랜드만의 고유한 울림을 만드는 것. 그것이 AX시대를 돌파하는 유일한 생존 전략이다.

전상욱 HSAD 디스커버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