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첨단융합 인재 양성 기조에 따라 국내 대학들이 학과 신설 및 정원 확대 등 학사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인프라 부족에 따른 부작용 우려가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교육 체계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은 급격한 외형 확장이 대학 현장의 혼란을 가중한다는 지적이다.
서울대는 올해 1월 첨단 분야 학과 신설 및 증원 신청안을 교육부에 제출하며, 대규모 학제 개편을 가시화했다. 지난해 12월 평의원회 본회의에서 신청안이 보고된 지 약 한 달 만이다. 대규모 신설과 증원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학내 교육 환경 변화에 대한 학생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서울대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39명 중 약 94%가 “첨단 분야 신설 및 증원 과정에서 본부와 학생 간의 소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답했다.
핵심 이유로 강의·인프라 등 학생 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점과 학제 편성에 학생 의견이 반영될 필요성 등이 꼽혔다. 또한 신설·증원에 따라 우려되는 사안으로 △교원 부족 △기숙사 수용 인원 부족 △셔틀버스 부족 △수강신청 인원 과포화 등이 언급됐으며, 특히 수강신청·기숙사 수용 문제에 대해서는 700명 이상의 학생이 “대책 마련이 매우 필요하다”고 답했다.
서울대 연석회의 관계자는 “대학의 외형적 규모 확대에 앞서 학생들의 실질적인 교육 여건을 보장할 수 있는 정교한 행정적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 관계자는 “교육부에 신청서를 제출해 검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며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학과 간 수강신청 포화로 인한 갈등도 대학의 시급한 과제다. 최근 고려대 통계학과는 데이터 분석 역량에 대한 수요 급증으로 전공생들이 수업을 듣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자 본전공 및 이중·복수전공생에게 먼저 수강 기회를 우선 부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조치로 인해 2021년 첨단학과 지원 사업으로 설립된 데이터과학과 학생들이 필수 수업을 듣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데이터과학과는 2021년 설립 당시 컴퓨터·통계·수학과가 전공 과목을 공유하도록 교과과정을 편성했기에 특정 학과의 갑작스런 수강 제한 조치는 곧바로 신설 학과 학생들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에듀플러스]“첨단학과 늘리라더니”…수강 포화·기숙사 부족, 대학가 '혼란'](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03/10/news-p.v1.20260310.4f98835afff64be1abf5b64eb34e7f0a_P1.png)
한양대 관계자는 “학과 신설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기존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충분한 소통과 설득이 선행돼야 한다”며 “수요가 몰리는 학과에 강의실과 예산 지원을 늘리되, 수업의 질 유지를 위해 수강 인원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철저한 수요 시뮬레이션과 더불어 전공별 인원 차이에 따른 장학금 수혜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해 비율 제도를 도입하는 등 세밀한 제도를 설계하고 개선하는 과정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대학의 급격한 외형 확장과 쏠림 현상이 단순한 정원 조정을 넘어 대학 내부의 자원 배분 체계 전반을 혁신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제언한다. 특히 데이터 기반의 예측 행정과 정교한 수요 시뮬레이션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유연한 학사 구조와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대학 본부의 중재 역할도 핵심이다.
한 교육정책 전문가는 인프라 부족을 막기 위해 “전공 자체의 인원 확대보다 학생들이 본래 전공을 유지하면서 부담 없이 타 분야를 경험할 수 있게 하는 등 교육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산하는 학사 구조로 유연화할 필요도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대학이 인프라 확충과 학내 소통이라는 기초 공사 없이 '첨단'이라는 성벽만 높인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오는 만큼, 대학 본부는 구성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교육의 내실을 채우는 정교한 학사 설계에 집중하고 혼란을 중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미현 기자 m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