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의 진보는 종종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바꾼다. 스마트폰 터치 한 번으로 전 세계의 정보를 검색하고, 복잡한 은행 업무를 집 안에서 해결하는 일상은 이제 당연한 권리가 되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한 '행정 서비스' 영역으로 들어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필요한 서류 한 장을 떼기 위해 여러 기관의 사이트를 전전하거나, 이미 정부가 보유한 정보를 증명하기 위해 서류를 출력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출범한 국가데이터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도 본질적인 과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각 부처와 공공기관이 보유한 데이터가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칸막이'에 갇혀 있는 현상을 타파하는 것이다. 데이터는 현대 사회의 원유라고 불리지만, 정제되지 않고 흩어져 있는 데이터는 그냥 고여 있는 정보에 불과하다. 데이터가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려면 서로 흐르고 융합돼야 한다.
국가데이터처가 지향하는 '데이터 거버넌스'는 단순히 데이터를 모으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행정의 패러다임을 '기관 중심'에서 '국민 중심'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그동안 각 부처는 고유의 목적을 위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해 왔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데이터의 형식과 기준이 달라졌고, 부처 간 정보를 공유하는 데 있어 보안과 책임 소재라는 높은 벽이 세워졌다. 이 벽, 즉 '데이터 칸막이'를 허무는 것이 바로 국가데이터처의 존재 이유다.
'데이터 기반 과학적 행정'의 성과는 서서히 국민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예를 들어, 여러 부처의 데이터를 통합하여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는 시스템을 들 수 있다. 단전, 단수 정보와 건강보험료 체납 정보 등이 실시간으로 연결되면서, 도움이 필요한 위기 가구를 선제적으로 찾아내는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졌다. 또, 분산돼 있던 교통, 상권, 인구 데이터를 결합해 소상공인들에게 최적의 창업 입지를 분석해 주는 서비스는 데이터가 어떻게 민생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올해는 '국가데이터기본법'의 제정을 통해 데이터 거버넌스가 한층 더 공고해지는 해가 될 것이다. 국가데이터처는 범정부 차원의 데이터 컨트롤타워로서, 부처 간의 이견을 조정하고 공공·민간데이터 모두 쉽고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표준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인공지능(AI) 기반 데이터센터를 확대하고 데이터 주권 보호와 데이터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노력 역시, 국민이 안심하고 데이터를 맡기고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데이터 칸막이를 여는 열쇠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국민의 편익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정책적 의지다. 정부 출범 2년 차, 본격적인 국정성과를 창출하는 시기를 맞아 우리는 지난 성과를 냉철히 복기하고 향후 4년의 로드맵을 그려보고 있다. 데이터가 막힘없이 흐르는 대한민국에서는 행정 서비스의 속도가 빨라질 뿐만 아니라, 청년들이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고, 국가의 의사결정이 직관이 아닌 철저한 근거에 기반하게 될 것이다.
국가데이터처는 앞으로도 데이터라는 보이지 않는 혈맥을 잇는 작업에 매진할 것이다. 칸막이가 사라진 자리에 국민의 신뢰가 쌓이고, 연결된 데이터가 국민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데이터 민주주의'의 시대가 활짝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데이터로 더 똑똑해지는 대한민국, 그 변화의 중심에 국가데이터처가 늘 함께할 것이다.
이명호 국가데이터처 차장 mhlee22@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