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자율주행, 흔들리는 이동권을 지킬 기회

하성용 한국자동차모빌리티안전학회장·중부대 교수
하성용 한국자동차모빌리티안전학회장·중부대 교수

최근 서울 시내버스 파업은 임금과 재정의 갈등을 넘어 시민 이동권의 불안정성을 드러냈다. 버스 운행이 멈추는 순간 공공교통에 대한 신뢰 역시 흔들린다. 서울시가 운영해온 '수익금공동관리형' 준공영제는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시간이 흐르며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민간 사업자는 노선 면허를 사실상의 영구 자산처럼 보유하고, 운영 적자는 세금으로 보전된다.

이 과정에서 효율성에 대한 유인은 약해지고, 노사 협상은 공공 재정에 대한 요구로 귀결된다. 시민은 요금 인상과 재정 부담이라는 이중의 비용을 떠안는다. 이는 국제적 기준과도 거리가 있다. 유럽 주요 도시들은 노선을 공공이 소유하고, 일정 기간 운영권을 경쟁 입찰로 위탁한다. 영국 런던과 독일 베를린, 프랑스 파리는 요금과 노선을 공공이 통제하고, 민간은 성과 중심 계약 아래 운영을 맡는다. 파업이 발생하더라도 최소 운행 의무와 공공의 통제 장치가 작동한다. 공공성과 안정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한 것이다.

일본과 미국의 사례는 또 다른 시사점을 준다. 일본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유지가 어려워진 지역 교통을 자율주행으로 보완하고 있다. 후쿠이현 에이헤이지 등에서는 자율주행 버스가 주민의 발이 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를 비용 절감이 아닌 '교통 복지 유지 수단'으로 정의한다. 미국 역시 대학 캠퍼스와 도시 일부 구간에서 자율주행 셔틀과 버스를 공공 교통망에 편입시켜 실증을 확대하고 있다.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자율주행이 일자리를 위협하고, 공공성을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떤 제도 안에서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먼저다. 버스 업계는 고령화와 인력 부족으로 지속 가능성 위기에 놓여 있다. 자율주행은 노동을 배제하는 도구라기보다 운전 중심 직무 구조를 관제·안전·유지관리 중심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다. 일본이 자율주행을 '고용 전환형 기술'로 접근하는 이유다.

안전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다수의 사고가 인적 오류에서 비롯되는 현실에서 기술의 가능성을 검증·통제 속에서 활용하는 것은 책임 있는 선택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공공성이다. 자율주행이 민간 이익을 키우는 수단이 될 것이라는 우려는 물론 현행 준공영제가 공공성을 충분히 지키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함께 제기돼야 한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공공의 통제 아래 두지 못하는 제도다. 자율주행은 버스를 무인화하자는 제안이 아니다. 노동 집약적 구조로 굳어진 대중교통 체계를 기술을 통해 재설계할 기회다. 이를 전제로 노선 입찰제, 공영 운영 확대, 공공 직접 운영 같은 논의도 비로소 현실성을 갖는다.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그 성과는 요금 안정, 이동 약자 서비스 확대, 외곽과 심야 노선 유지로 시민에게 돌아가야 한다. 자율주행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우리가 어떤 이동권을 지향하는가의 문제다. 파업과 재정 투입을 반복하며 현행 제도를 연명시킬 것인지, 기술을 활용해 공공교통의 틀을 다시 짤 것인지 선택의 시점에 와 있다. 자율주행은 효율의 이름으로 공공성을 포기하자는 제안이 아니다. 흔들리는 이동권을 지키기 위한 드물게 주어진 구조 전환의 기회다.

하성용 한국자동차모빌리티안전학회장·중부대 교수 hsy139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