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 최대 걱정거리였던 '약가 인하'가 결정됐다. 정부는 기형적인 약가 구조를 바로 잡고,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도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설명한다. 약값 부담이 낮아지니 국민과 환자도 결정을 반긴다.
국내 제네릭(복제약) 약가가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글로벌 제약시장에서 추격자인 한국이 취할 수 있는 불가피한 전략이었다. 제네릭으로 투자 여력을 확보하고, 그 자금을 신약 개발에 투자하는 것이 그동안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 전략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다.
지난해 국내 제약바이오 기술 수출은 20조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신약 후보물질과 기술이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다.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성과가 나면서 주춤했던 벤처투자도 살아났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바이오·의료 벤처캐피탈(VC) 신규 투자금액은 전년 대비 11% 늘어난 1조1889억원을 기록했다. 2023년 1조원에 못 미쳤던 신규 투자금액이 2024년 회복세로 돌아선 뒤 2년 연속 상승했다.
한편으로는 약가 인하가 살아나는 제약바이오 산업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제네릭 약가 산정률 마지노선을 48.2%라 주장했던 제약사들은 수익 악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약가 인하로 인한 손실액이 3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문제는 단순히 매출과 이익 하락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제약사들의 수익성 악화는 연구개발(R&D) 투자 여력 축소를 의미한다. 지난 2024년 기준 의약품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국내 제약사 127곳의 R&D 투자 규모는 2조8139억원이다. 약가 인하로 인한 예상 손실액은 연간 R&D 투자 규모를 넘어선다.
결국 제약사들은 위험 부담이 큰 R&D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고, 이는 국가 제약산업 경쟁력 약화 요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제약바이오협회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이미 주요 제약사의 R&D 투자 축소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신약 파이프라인을 포기하거나, 이를 위한 검토에 착수한 기업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사들이 수익성 악화를 막기 위해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그나마 대형 제약사는 수익성 악화를 버틸 여력이 있지만, 중소·중견 제약사는 타격이 클 수 있다. 때문에 중소 제약사의 도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 경우 일자리 감소와 산업 경쟁력 약화는 피할 수 없다.
약가 인하를 결정한 시점도 아쉽다.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환율과 유가가 급등하고, 각종 원자재 공급망도 불안해졌다. 여기에 약가 인하까지 더해졌으니 제약사 경영환경은 그야말로 '시계제로'다. 이같은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약가 인하는 자칫 '악순환의 고리'가 될 수 있다.
정부가 정한 약가 인하를 따르지 않을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후폭풍을 줄이는 보완대책을 촘촘히 마련하는 것이다. 신약 개발과 임상시험에 필요한 투자금 지원 펀드, 국가적으로 필요한 신약 개발 과제 도입 등으로 재정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R&D 투자 세제 혜택 확대도 방법이다. 제약사의 신약 개발을 돕기 위한 제도 개선도 병행해야 한다. 각종 인허가 절차와 심사 기간을 줄여 혁신 신약의 시장 진입 속도를 높여야 한다.
빈틈없는 보완대책을 통해 약가 인하가 제약산업 구조를 개선하고, 건강보험 재정도 건실화하는 '선순환의 고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권건호 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