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약가 인하에 중소·중견제약사 R&D·고용 우려 확산

생성형 AI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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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최근 6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제네릭(복제약) 약가 산정률을 현행 53.55%에서 45%로 인하하는 안을 의결했다. 14년 만에 약가제도 대수술로, 혁신 연동 보상체계를 도입해 연구개발(R&D) 우수 기업에 약가 가산 60%(최대 4년) 혜택을 부여하며 제네릭 중심 산업 구조를 신약 개발 중심으로 재편한다는 목표다.

제약산업 구조 개선·건강보험 재정 건실화에 나선 정부 결정이지만 현장에서는 경영 여건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특히 제네릭 처방과 내수 시장 의존도가 높은 중소·중견 제약사를 중심으로 경영 환경 악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거대 제약사 대비 재무 기초 체력이 열세인 중소·중견 제약사에서 약가 인하에 따른 매출 감소와 고정비 부담이 맞물리며 R&D 비용 축소와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제약업계 일제 반발…정부 대책 실효성 낮아

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등 관련 7개 단체로 꾸려진 '산업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최근 이번 약가 개편안에 우려를 표했다.

비대위는 국내 제약기업 평균 영업이익률 5%대인 경영 환경을 감안해 정부에 최대 인하안(산정률)을 48.2%로 제안했으나, 정부가 이를 밑도는 45%(현행 대비 16% 인하)로 확정하면서 제약 산업 생태계 약화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앞서 비대위는 약가 인하가 단행될 경우 국내 제약 업계에서 연간 최대 3조6000억원 규모 매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출 확대나 사업 다각화 여력이 있는 대형 제약사와 달리, 내수 제네릭 의존도가 높고 고정비 부담이 큰 중소·중견 제약사는 약가 인하 충격을 흡수할 여력이 부족해 곧바로 수익성 악화와 현금흐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슈플러스]약가 인하에 중소·중견제약사 R&D·고용 우려 확산

정부가 제시한 혁신기업 우대안 역시 중소·중견 제약사에게는 실효성이 낮은 대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현재 제약 산업 구조를 신약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 혁신형(약가 가산 60%·최대 4년)과 준혁신형(약가 가산 50%·최대 4년) 기업을 분류해 차등 우대하고, 필수의약품 직접 생산(약가 가산 68%·최소 10년) 등에 우대 조치를 적용하는 우대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대형 제약사마저 수익성 저하로 연구개발(R&D) 투자를 보수적으로 집행하는 상황에서, 자본력이 취약한 중소·중견 제약사가 정부의 인증 요건을 충족해 우대 혜택을 받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크다는 분석이다.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기업 규모에 따라 5~7% 수준이던 R&D 투자 비중 기준이 7~9%로 상향된다. 여기에 정부가 인증심사에서 임상시험·수출 등 정량지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하면서 중소·중견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제네릭을 포함한 동일 성분 의약품 기준 약가 인하 적용 시점을 기존 20번째에서 13번째로 앞당겼다. 제네릭·동일 성분 제제는 13번째부터 낮은 약가가 적용된다는 의미다. 기존 등재 약제 또한 인하되는 조치가 병행되면서 중소·중견 제약사의 주요 수익원은 더욱 축소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개편안에 따라 제약사 영업이익이 10%가량 낮춰질 전망”이라며 “이미 일부 파이프라인(연구개발)을 포기한 기업도 늘고 있으며, 내년부터 인건비 절감 등 업계 종사자들에게도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59개 제약사 CEO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매출 손실을 우려하는 결과가 나왔다. 비대위 조사에서 CEO들은 제네릭 약가 40%대 조정에 따른 연간 예상 매출 손실액을 1조2144억원으로 전망했다. 제네릭 출시 취소·보류 기업은 44개사로 집계됐으며, 품목 정리와 직원 감축도 검토 중이다.

[이슈플러스]약가 인하에 중소·중견제약사 R&D·고용 우려 확산

신약 개발은 중단…국산 원료 사용은 '뚝'

고정비 부담이 큰 제약업 특성상 수익 감소는 R&D 예산 삭감으로 직결된다. 2023년 국내 신약 개발 R&D 자금 3조1947억원 중 77%를 민간 제약 기업이 부담하는 구조에서 수익 감소는 R&D 위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비대위 설문에 참여한 59개 제약사 R&D 비용은 2024년 1조6880억원에서 올해 4270억원 감소해 평균 25.3% 축소될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조사에서는 신약 개발 중단을 고려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A제약사는 약가 인하로 신약 개발 중단을 검토 중이다. 10조원 규모 글로벌 희귀난치질환제 시장에 도전 중인 B사는 시간·비용 부담으로 신약 개발 프로젝트 재검토에 착수했다.

보건 안보와 안정적 수급을 위한 국산 원료 사용 유인도 급격히 저하되고 있다. C사는 수입산(㎏당 9만원) 대비 월등히 비싼 국산 원료(㎏당 28만원)를 품질·보건 안보를 위해 활용했으나, 약가 인하로 수입산 원료 사용을 고려 중이다. 일각에서는 필수의약품 품질 하락과 국산 원료 고사 우려도 나온다.

일자리 흔들…“제도 보완·민관 대화 시급”

한국민주제약노동조합은 이번 개편안이 시행될 경우 제약 산업 종사자 12만여명 중 1만4000여명이 실직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제약 산업은 타 제조업 대비 매출액 대비 고용유발 효과가 높은 특성을 지닌다. 이에 따라 개편안 여파로 연구·생산·품질·영업 등 전 부문에 걸친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노동계 분석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이미 다수의 제약기업이 연구개발·설비 투자계획 축소와 함께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한 상황”이라며 “향후 가동될 민관협의체가 의약품판촉영업자(CSO) 유통구조 개선과 제네릭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약가제도를 주요국 수준으로 선진화해 국민 보장성을 높이고 약품비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연구개발·필수의약품 수급 안정 노력에 대한 보상 체계 지원도 마련했다”고 전했다.

임중권 기자 lim918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