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균 한국전력기술 사장이 원전 설계 역량을 앞세운 '팹리스(설계 중심)' 전략을 공식화하며 사업 구조 대전환을 선언했다. 설계·엔지니어링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직접 수주를 확대하고, 소형모듈원자로(SMR)와 해상풍력을 양축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겠다는 구상이다.
김 사장은 28일 기자간담회에서 “반도체의 엔비디아처럼 설계 경쟁력을 기반으로 전 세계를 상대로 사업하는 구조로 가야 한다”며 “글로벌 설계·엔지니어링 기업으로 체질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실제 한전기술의 역할은 원전 산업 전반에서 '설계 컨트롤타워'에 가깝다. 원전 건설 사업에서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는 물론 인허가 문서, 시공 패키지, 시운전 절차까지 전 주기를 아우르는 엔지니어링을 수행하며, 주기기·보조기기·시공사와의 연계를 총괄한다. 특히 설계 엔지니어링이 주기기 제작·시공·사업관리의 중심에 위치하는 구조로, 사실상 원전 프로젝트 전체 품질과 비용을 좌우하는 핵심 축으로 평가된다.
핵심 성장축은 SMR이다. 한전기술은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혁신형 SMR(iSMR)' 개발과 함께 독자 모델 '반디(BANDI)' 원천 설계기술 개발을 추진 중이다. 한전기술의 SMR은 300㎿ 이하 소형 원자로로 공장 제작·모듈화가 가능해 설치 유연성이 높고, 사고 저항성과 안전성이 강화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반디는 해양 적용을 전제로 한 차별화 모델이다. 선박·해양플랜트에 탑재해 전력 공급이 가능하도록 설계됐으며, 피동안전계통과 일체형 구조를 적용해 안전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내년 사업모델 확보, 2030년 표준설계 완료를 목표로 상용화 로드맵도 제시됐다.
글로벌 시장 공략도 병행한다. 현재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APR1000 2기, 약 26조원 규모) 설계 참여를 추진 중이며, 베트남에서는 SMR 도입을 위한 협력 논의와 함께 데이터센터용 마이크로 SMR 공급 모델까지 검토되고 있다.
해상풍력도 또 다른 성장축이다. 한전기술은 전북 서남권 800㎿급 해상풍력 확산단지 등 대형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사업개발부터 설계·구매·시공(EPC), 전력계통 설계까지 전주기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 제주 한림(100㎿) 등 실적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회사는 이어 자체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비스 'NEXA'를 시연하고 AI 전환(AX) 기반 혁신 계획을 공개했다. 한전기술은 설계 전 과정에 AI를 적용해 반복 업무를 줄이고 판단 지원 기능을 강화하는 등 지능형·자율형 설계 체계로 전환을 추진할 방침이다.
한편, 인력 운영과 수익 구조 문제가 한전기술의 핵심 과제로 지목됐다. 김 사장은 “설계는 원전 산업에서 가장 취약한 고리”라며 “탈원전 시기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채용을 최대 3배까지 확대하고 AI 기반 설계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설계 비용 비중이 5~6%에 불과해 고급 인력 확보가 어려운 구조”라며 “설계 가치에 대한 시장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