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시론] 모빌리티 혁명에 뒤처진 한국, '제도적 활주로'를 깔아야 할 때

이성엽 고려대 교수
이성엽 고려대 교수

자율주행 시장의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이제 주요국은 레벨 4, 즉, 정해진 운영설계 영역 안에서 운전석에 사람이 없는 상태로 시스템이 주행 전 과정을 책임지는 단계로 진입했다. 완전 무인 자율주행은 더 이상 언젠가 올 미래가 아니라, 이미 시민의 일상 동선 위에서 작동하는 현재형 산업이 됐다.

미국 웨이모(Waymo)는 피닉스·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한 8개 도시에서 상용 로보택시 서비스를 운영 중이며, 주당 운송 건수가 25만 건을 넘어섰다. 중국 바이두(Baidu)의 아폴로고(Apollo Go)는 더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베이징·우한·광저우 등 본토 주요 도시에 더해 글로벌 22개 도시로 서비스 권역을 넓히며, 누적 운행과 주당 운송 건수에서 웨이모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우버(Uber)는 웨이모·영국 웨이브(Wayve)·중국 위라이드(WeRide)와 잇달아 파트너십을 맺으며 글로벌 자율주행 네트워크의 운영 레이어 자리를 선점하고 있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변곡점이 보인다. 중국 포니 AI(Pony AI)는 광저우 로보택시 운영에서 단위 경제 기준 손익분기점을 넘겼다고 발표했다.

이 스코어보드 위에 한국의 이름은 없다. 현대차·기아의 자율주행 기술력, 네이버·카카오의 모빌리티 플랫폼, 국내 스타트업의 인지·판단 알고리즘이 있지만, 아직 레벨 4 자율주행은 상용화되지 않고 있다. 한국이 뒤처진 영역은 자율주행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이 시민의 일상에 들어가서 운임을 받고 운행되는 '상용 서비스'의 단계다. 시범운행과 실증은 전국 40여 곳의 시범운행지구를 중심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만, 이용자가 무인차를 호출해 출퇴근에 사용하는 일상은 여전히 멀다.

자율주행시장 활성화 해법
자율주행시장 활성화 해법

물론 최근의 규제 완화 흐름은 분명 의미가 있다. 자체 안전 계획을 전제로 한 스쿨존 자율주행 허용, 영상데이터 익명·가명처리 특례 입법, 기존 A형 자율차에 국한되었던 신속 허가 제도를 B형, C형까지 전면 확대 적용, 시범운행지구 지정 권한의 시·도지사 이양까지 일련의 조치는 진일보다. 그럼에도 결정적 한계는 규제 완화가 '실증 트랙'에 편중돼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특례법은 빠른 실증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정작 상용화 단계의 장벽인 면허 체계 정비, 시장참여자 간 책임 분배, 보험·사고 책임 같은 영역은 이해관계 충돌이 커서 늘 장기 과제로 밀려났다. 결과적으로 실증 규제는 가벼워졌으나 상용화 규제는 그대로 남는 비대칭이 굳어지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정해놓은 안전한 구역, 변수가 통제된 조건이라는 '격리된 테스트베드(Isolated Testbed)' 함정이 도사린다. 자율주행 기술은 비선형적으로 발전하는 만큼, 기술이 임계점을 넘은 뒤에야 면허·책임·보험 제도를 손보면, 법·시행령·고시·이해관계자 협의에 통상 3~5년이 걸려 기술이 준비된 시점에 오히려 시장 진입이 지연되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통제된 환경에서는 결코 축적되지 않는 자산들도 있다. 실수요와 가격 민감도 시그널, 보험 손해율 데이터, 한국형 도심에 특화된 엣지케이스, 서비스 운영 노하우,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의 사회적 수용성이다. 자율주행 산업의 경쟁력은 단순히 알고리즘 정확도만이 아니라, 이러한 현실 운영 데이터와 사회적 경험의 축적 여부에 의해 좌우된다.

또한 자율주행 데이터가 쌓일수록 모델 성능이 향상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먼저 진입한 사업자는 더 많은 주행기록을 모으고, 더 많은 엣지케이스를 학습하며, 더 정교한 안전 모델과 운영 노하우를 갖춘다. 이 학습 사이클은 후발주자가 따라잡기 어려운 기하급수적 격차를 만든다. “실증부터 차근차근”이라는 직렬적 접근은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국이 매일 격차를 더 벌리는 길을 선택하는 것에 가깝다. 결국 상용 서비스야말로 데이터·운영 노하우·사회적 수용성이 동시에 축적되는 유일한 구간이라는 점에서 이는 기술 완성 후가 아니라 그 전에 미리 깔아둬야 하는 '활주로'에 가깝다.

자율주행시장 활성화 해법
자율주행시장 활성화 해법

결국 해법은 두 축에서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첫째, 자율주행 서비스 시장의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 기업이 실제 소비자와 부딪히며 요금·서비스 디자인을 시험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고도화할 공간이 있어야 그 안에서 진짜 학습과 개선이 일어난다. 정부의 역할은 모든 변수를 사전에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 기준을 명확히 한 뒤 시장이 스스로 진화할 여지를 만드는 것이다. 둘째, 정부는 기술 완성을 기다리지 말고 지금부터 상용화 법·제도 정비에 착수해야 한다. 로보택시 서비스의 제도화는 기존 택시, 렌터카, 화물운송 등의 면허 체계 및 이해관계자와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하고, 제조사·솔루션 개발사·플랫폼 운영자 사이의 역할과 책임 구조도 명확히 정립돼야 한다. 보험도 제조물 책임보험, 운영사 책임보험, 초기 시장의 손해율 변동성을 흡수할 정부 재보험 풀까지 포괄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자율주행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의제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에서는 이미 시민의 생활 동선을 바꾸고 있다. 자율주행 경쟁은 결국 누가 먼저 기술을 개발했느냐보다, 누가 먼저 제도·시장·시민 경험을 함께 축적했느냐에 의해 승부가 갈릴 가능성이 크다. 지금이 바로 그 속도를 높여야 할 시점이며, 이미 주요국 대비 상당한 격차가 벌어진 상황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한국정보통신법학회장 dysylee@korea.ac.kr

〈필자〉고려대 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미국 미네소타대 로스쿨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고, 서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 로스쿨 방문학자를 거쳤다. 1991년 제35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정보통신부, 국무조정실과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거쳐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정보통신법학회 회장, 한국데이터,인공지능법정책학회 명예회장, 한국공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고 고려대 기술법정책센터장/데이터·AI법센터 대표를 겸하고 있으며, 국가행정법제위원회 위원, 국가데이터정책위원회 위원,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규제심사위원장 및 국가AI전략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행정 경험, 법률 이론과 실무를 기반으로 AI, 데이터, 개인정보, 인터넷, 정보보안, 방송, 통신 등 ICT 전 분야 법과 정책에 정통한 권위자이다.

박지성 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