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Beyond Steel'] 카카오모빌리티가 방산업체가 된다면...

-방위산업의 재정의: '쇠'의 전쟁에서 '알고리즘'의 전쟁으로

박용후/관점 디자이너, 육군&공군 발전자문위원
박용후/관점 디자이너, 육군&공군 발전자문위원

최근 세계 전장(戰場)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우리가 알던 '전쟁의 문법'이 송두리째 바뀌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과거의 전쟁이 누가 더 단단한 장갑차와 파괴력 있는 포탄을 가졌느냐는 '물리적 충돌'의 영역이었다면, 이제는 누가 더 먼저 적을 발견하고, 누가 더 정확하게 무인기를 유도하며, 누가 더 효율적으로 보급망을 통제하느냐는 '정보와 지능'의 영역으로 옮겨갔다. 이른바 '인텔리전트 트랜스포메이션(Intelligent Transformation)'이 국방의 심장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방위산업이라고 하면 거대한 굴뚝과 육중한 설비를 갖춘 대형 방산 업체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 지점에서 '관점의 전환'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제 방산은 '특정 업체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가의 모든 혁신 기술이 집결되는 '테크놀로지의 종착지'가 되어야 한다. 특히 미국 방산 생태계의 변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미국의 혁신, '프레임'을 깨고 '속도'를 사다

미국 국방부(DoD)는 최근 몇 년 사이 스타트업들이 방산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문턱을 파격적으로 낮췄다. 그 중심에는 DIU(국방혁신유닛)와 OTA(기타거래권한)라는 유연한 제도가 있다. 전통적인 조달 절차가 수년씩 걸리는 '거북이 행정'이었다면, 이들은 수개월 만에 민간의 첨단 AI 기술을 군에 이식하는 '쾌속 통로' 역할을 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 정부가 스타트업의 '규모'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문제 해결 능력'에 집중했다는 사실이다. 안두릴(Anduril)이나 팔란티어(Palantir) 같은 기업들은 스스로를 방산업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를 '소프트웨어 기업'이라 정의한다. 이들은 무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장의 모든 데이터를 연결해 지휘관에게 최적의 답을 제시하는 '두뇌'를 만든다. 미국은 지금 쇠를 깎는 기술이 아니라, 전쟁의 판도를 읽는 '알고리즘'을 사고 있는 것이다.

한국 방산의 현실, 강인한 체력에 '스마트한 두뇌'를 얹어야 할 때

대한민국의 방위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K2 전차, K9 자주포, 현무 등 이른바 'K-방산'은 압도적인 제조 역량과 가성비로 전 세계의 선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짚어보자. 우리의 강점은 여전히 '하드웨어'에 머물러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체력을 갖췄지만, 그 체력을 운용할 소프트웨어, 즉 '두뇌'의 경쟁력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 군의 고질적인 문제는 민간의 혁신 속도가 군의 조달 체계를 한참 앞질러 가고 있다는 점이다. 민간에서 AI 기술은 자고 나면 바뀌는데, 우리 군의 무기 체계 획득 절차는 여전히 10년 뒤의 완벽함을 꿈꾸며 오늘의 혁신을 외면하곤 한다. 이제 우리도 미국의 사례처럼 '실패할 자유'를 주는 유연한 계약 체계와,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실력만 있다면 누구나 국방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는 개방형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카카오모빌리티가 AI 방산기업이 된다면?

필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평소 일상에서 사용하는 플랫폼 기술이 어떻게 국방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상상을 해보길 권한다. 예를 들어, '카카오모빌리티'와 같은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이 방위산업의 파트너로 참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첫째, 전술적 자원 배정의 최적화다. 카카오모빌리티의 핵심 역량은 수만 대의 차량과 호출을 실시간으로 매칭하고 최단 경로를 찾아내는 알고리즘에 있다. 이를 국방에 이식하면 전장에서 수만 명의 병력과 보급 물자를 가장 안전하고 빠른 경로로 배치하는 '전술 매칭 시스템'이 된다. 복잡한 시내 도로 상황을 분석해 최적의 이동 수단을 배차하듯, 전장의 지형과 적의 위협 수준을 실시간 분석해 최적의 병력을 투입하는 지능형 지휘 통제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둘째, 무인 체계의 자율 주행 능력 고도화다. 모빌리티 기업이 쌓아온 방대한 주행 데이터와 자율주행 알고리즘은 군의 무인 수색 차량이나 드론에 즉각 적용될 수 있다. 거대한 제조 시설 없이도, 민간에서 검증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가 우리 군의 무인 무기 체계에 탑재되는 순간, 그 무기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피지컬 AI'로 진화한다.

셋째, 군수 보급의 스마트화다. 전쟁의 승패는 보급에 달려 있다. 민간의 정교한 물류 네트워크 관리 기술은 군의 복잡한 보급망을 실시간으로 가시화하고, 결손이 발생하기 전 미리 예측해 대응하는 '예지 보급'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방산은 '국가의 모든 역량'을 결집하는 장이어야 한다

이제 방산은 특정 업체만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방산은 보안이라는 이름 아래 닫혀 있는 섬이 아니라, 민간의 가장 앞선 기술이 가장 먼저 테스트 되고 적용되는 '혁신의 전장'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방산'이라는 단어를 '국가 안보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 사업'으로 재정의한다면, 카카오모빌리티 같은 IT 기업부터 작은 AI 스타트업까지 모두가 훌륭한 방산업체가 될 수 있다. 하드웨어의 강점을 유지하되, 그 안에 민간의 유연하고 강력한 소프트웨어라는 '영혼'을 불어넣는 것. 그것이 바로 K-방산이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진정한 의미의 국방 혁신을 이루는 유일한 길이다.

관점을 바꾸면 보이지 않던 '고릴라'가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 우리 국방에 필요한 것은 더 큰 공장이 아니라, 더 넓은 시야와 민첩한 혁신의 연결이다.

박용후/관점 디자이너, 육군&공군 발전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