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국가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기술로 떠오르며 이를 뒷받침할 고도화된 통신 인프라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초고속·저지연 데이터 처리를 위한 AI 데이터센터(AIDC)와 6G 등 차세대 네트워크 투자가 시급한 시점이다. 그러나 국내는 노후화된 구형망을 연명하는데 한정된 자본이 분산되면서 통신망 세대교체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후화되고 비효율적인 구형 인프라로 3G 무선망과 유선전화망(PSTN)이 꼽힌다. 사용량이 급감하며 효용성을 상실했지만 이용자 보호라는 명분 아래 유지 보수에 막대한 재원이 투입되고 있다. 망 진화 및 대체를 위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 3G·PSTN, 돈·전기 낭비 넘어 안전까지 위협
23년전인 2003년 상용화된 3G 가입자는 약 35만명으로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의 0.6%에 불과하다. 트래픽 비중은 0.0013% 수준이다. 그럼에도 통신사는 전국 약 30만개의 3G 무선국을 유지하며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20년 넘은 구형기술인 3G 기지국은 5G 대비 데이터 처리 효율당 전력 소모가 10배 이상 높다. 5G의 5㎒폭당 데이터 전송량은 66.0Mbps이지만 3G는 5.1Mbps에 불과하다. 전력 확보가 AI 시대의 핵심 과제로 부상한 가운데, 사용량이 극미한 노후망이 전력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주파수 자원도 문제다 3G 주파수인 2.1㎓ 대역은 저대역으로, 직진성(신호가 장애물을 뚫고 지나가는 성질)과 회절성(신호가 장애물을 회피해 나아가는 성질)이 현재 사용되는 5G 주파수에 비해 우수하다. 주파수 자원 고갈 상황에서 5G·6G를 위한 새로운 황금 주파수로 활용 가능하다.
PSTN 방식의 유선전화망은 주로 집전화로 사용되는 시내전화다. 1960년대부터 구축된 구리선 기반으로 구성됐다. 한때 2000만 회선이 넘는 대표 통신수단으로 꼽혔지만 인터넷전화(VoIP)의 보급으로 사용자가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PSTN 보편적 역무로 지정돼 있어, 통신사는 고정 유지비를 지속 지출하며 서비스를 유지하고 있다. PSTN 설비의 노후화 및 이로 인한 운용비용은 1조원이 넘는 손실로 이어졌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통신 3사의 시내전화 영업손실액은 전년보다 57% 늘어난 1조2973억원에 달한다. 이 대규모 손실은 보편적 역무를 맡은 KT가 가장 크고, 다른 통신사도 보편 역무 분담금을 내며 통신산업 전반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구형망의 장기 연명은 재무적 손실을 넘어 물리적 장애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통신망이 All-IP로 진화하면서 구형 회선교환 장비는 대부분 단종됐고, 제조사 유지보수 기한도 만료됐다. 장비가 고장나면 , 폐기된 장비에서 부품을 떼어 쓰는 돌려막기식 연명이 상시화되면서 통신장애 리스크가 폭증하고 있다.

◇ 노후망 셧다운 로드맵·보편적 역무 제도 손질 필요
이같은 구조적 비효율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정책 당국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AI 고속도로 구축과 기존 통신서비스 안정성 확보를 위해서는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3G에 대해선 이용자 보호 관점을 넘어, 혁신 기술을 수용하는 현실적 접근이 필요하다. PSTN 역시 아직 가입자가 많이 남아 있지만, 중장기 대책을 수립할 시점이다.
해외 주요국은 이미 미래 네트워크 인프라 투자에 집중하고 구형망 중복 투자를 방지하기 위해 조기 종료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2014년부터 PSTN 종료를 통해 광케이블 투자에 집중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조성했고, 3G 주파수 자원을 5G에 재배치했다.
구형망의 대체를 가로막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공공안전 관련 서비스다. 112·119 긴급전화 및 승강기 비상전화는 3G 망에 의존하고 있다. PSTN은 구리선 소량의 전력을 전송해 전원 연결이 필요없다는 점에서 긴급 전화로 활용된다. 구형망에만 의존하고 있는 특수 서비스에 대한 면밀한 전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0년 이상 유지된 유선·음성전화 중심의 보편적 역무 제도도 AI 시대 변화에 맞게 재정의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현행 보편적서비스 제도는 효용성이 줄어든 망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그대로 감수하면서 사업자간 분담하는 비효율이 지속된다. 관련 비용을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제도환경을 조성하고, 수명을 다한 3G·PSTN 퇴로를 열어줘 미래 인프라 집중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노후화된 구형 통신망을 걷어내고 미래지향적 AI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우리나라 ICT 산업 미래가 달린 중대한 문제”라며 “인프라 세대교체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인 만큼 신속한 사회적 논의와 국가적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준호 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