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비핵화와 정권교체를 목표로 선전 포고없이 선제 타격, 미국-이란 전쟁이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미국은 핵무기, 항공모함, 우주 및 사이버 전력 등을 모두 갖춘 종합 군사 강국이 됐고, 세계 1위 압도적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라는 사실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 발발 3개월이 지났음에도 미국이 이란 정권의 붕괴나 항복을 받아내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미국의 군사 헤게모니(Military Hegemony)에 대한 세계인의 평가도 엇갈리고, 동맹을 통한 집단안보 체제도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개별 국가의 중앙은행이 보유 중인 자산 중 약 57%가 미국 달러와 채권이고, 국제 무역의 4분의 3이 달러로 거래되고 있지만 중국 위안화의 결제 비중 증가, 미국의 일방적 관세 전쟁과 약달러 정책, 페트로 달러 체제 약화 또한 달러 헤게모니(Dollar Hegemony)의 지속가능성에 회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과 운영 측면과 관련, 올해 초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UN) 산하기관을 포함해 총 66개 국제기구에서 미국이 탈퇴하거나 재정지원을 중단하고, 이를 전용해 국방비를 증액하겠다고 발표했다. 즉, 기후·평화·안보 등 글로벌 규범 설정과 운영 등 소프트파워 분야에서 미국의 역할을 축소하고, 반대로 '미국 우선주의'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제2차 대전 이후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 구축과 운영, 즉 거버넌스가 중국의 지속 성장, 유럽 등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관세 압박과 이란 전쟁으로 인해 21세기 미국을 주축으로 운영되던 그간의 국제질서 신뢰도와 지속가능성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2022년 11월 챗GPT 출시 이후 5월 현재 무료 챗봇 사용자가 세계 인구의 약 16%에 이르는 13억명으로 추산되고, 월 20달러 이상을 지출하는 유료 서비스 이용자가 1500만 명에서 2500만명으로 폭증하는 중에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AI 거버넌스 논의도 본격화하고 있다. 올해 4월 발표된 스탠퍼드 인공지능(AI) 지표는 미국이 주요 AI 모델 수, 민간 투자 금액 등에서 중국에 비해 월등히 앞서지만, 모델 간 성능 격차는 크게 줄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미국 최고의 AI 모델 엔트로픽 클로드 오퍼스 4.6과 중국 최고의 모델 바이트댄스 Dola Seed 2.0 사이에 기술 격차는 거의 없을뿐더러 2023년과 비교할 때 약 10배 가까이 그 격차가 줄어들었다.
미국과 중국의 AI 기술 격차 축소와 거버넌스 구축 경쟁 격화를 반영하듯이 2025년 7월 중국 리창(李强) 총리는 세계 AI 대회(WAICO)에서 중국은 안전하고 통제할 수 있는 인간 중심의 AI 기술 개발을 추구하고, 아울러 AI가 인류에게 혜택을 주는 국제 공공재로 활용돼야 한다는 의견을 공표했다. 특히 글로벌 사우스 국가에 AI 역량 개발과 기술인프라를 지원하는 등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과 규칙 제정을 위한 세계 AI 협력 기구 설립을 제안했다.
이에 비해 미국은 2025년 7월 AI 행동계획(America's AI Action Plan)을 발표하면서 불필요한 규제의 폐지·완화,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구축과 동맹국에 AI 풀스택 수출 등 미국의 이익과 발전 중심의 목표를 설정하면서, 중국에 대해서 강력한 수출 통제를 통해 지속적으로 견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어서, 마치 20세기 국제질서 형성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미국이 21세기 글로벌 AI 거버넌스에서는 중국과 완전히 입장이 뒤바뀐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듯하다.
2019년 OECD가 AI 권고안을 발표한 이후 UN, EU, G7, G20, 유네스코 등에서 AI의 안정성, 공정성, 투명성, 책임성 등을 확보하기 위해 거버넌스 구축을 논의했지만, 미국의 다자주의 거버넌스에 대한 소극적 참여와 불신, 회원국의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과 추진이라는 국제기구의 한계와 구속력 부족, 중국과 글로벌 사우스 국가 간 협력을 통한 거버넌스 구축 논의 등으로 실효성 있는 진전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
한국은 2024년 AI 서울 정상회의 등을 통해 논의에 참여하고는 있지만 독자 모델 보유, HBM 메모리 제조 역량, 산업용 로봇 활용, AI 정책 대응 등에서 최상위 그룹 국가로서 평가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글로벌 AI 거버넌스 구축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고, 국내외 여건도 상당히 좋다. AI 3강 국가를 추구하는 한국에 유리한 글로벌 상황을 살펴보면 첫째, 올해 초 베이징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과거의 경색된 양국 관계가 회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드웨어 제조 역량과 높은 수준의 AI 기술력을 가진 한국이 외교적 중립성을 기반으로 미국과 중국 간의 AI 경쟁과 견제를 페이스 메이커로 중재, 조정한다면 미국과 중국의 협력을 끌어내기가 수월하고, 이는 한국 주도형 글로벌 AI 거버넌스를 구축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중국 또한 한국과 협력 필요성을 실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11월 중국은 제조와 서비스 분야에서 AI를 접목하여 공동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글로벌 공급망 측면에서 기술적 협력을 강화하자는 제안을 한국에 하였는데 이를 산·학·연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수렴하여 한중 기술협력 관계 복원과 더불어 거버넌스 구축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도 있다. 셋째, UN AI 허브 유치가 가시화돼 이번 지방선거에서 다수의 후보가 지역 유치를 공약으로 발표하였고,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가 발표한 초지능연구소도 계획대로 설립된다면 글로벌 AI 거버넌스를 주도할 수 있는 외형적, 실체적 여건을 한국이 갖추었다는 평가를 국제사회로부터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27년 말 5000억원 이상이 투입된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소버린 AI)의 서비스 개발 이후 국내뿐 아니라 AI 인프라, 기술 수준, 활용 역량 등이 부족한 글로벌 사우스 국가 등에 적극적으로 이용을 개방하고 활용을 권장한다면, 한국 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은 물론 AI 3강 국가로서 한국의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다고 볼 때, 글로벌 AI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국가 차원의 외교적, 실용적 노력은 더 장기적, 전략적, 체계적으로 추진돼야 할 중요한 전략과제라고 할 수 있다.
금봉수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연구위원 keumbs@ni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