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가 160일 넘게 이어진 임금·성과급 갈등을 극적으로 봉합했지만, 반도체 공장을 함께 움직여온 중소 협력업체는 오히려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임직원과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는 협력사 직원의 처우 개선과 성과급 요구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다. 일부 현장에서는 노조 설립 움직임까지 감지되는 등 “원청 갈등의 불씨가 협력사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설비 운영을 맡고 있는 중소 협력사들은 최근 성과급과 처우 문제를 둘러싼 현장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수백명 규모 인력을 파견 중인 일부 기계설비·유지보수 협력업체에서는 노조 설립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는데다, 사내 익명 게시판 등을 중심으로 임금·성과급 수준에 대한 의견 공유도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유지보수 업계 특성상 수백명 단위 인력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내 클린룸과 생산라인에 상주 근무하는 구조라 원청 노사 이슈가 협력사 현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에는 원청과 협력업체간 보상 체계를 별개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했다면, 최근에는 같은 공간에서 동일한 공정을 수행하는 만큼 처우 격차를 문제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약 700명 규모 인력을 파견해 설비 운영 업무를 맡고 있는 중소기업 A사 역시 최근 내부 분위기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A사 CEO는 “삼성전자 직원들과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다 보니 내부 직원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임금과 성과급 비교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며 “중소 협력사 입장에서는 노조를 설립해 원청 수준의 보상 요구가 현실화될 경우 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협력사 직원들이 원청과 처우를 별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했지만 최근에는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만큼 비슷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커지고 있다”며 “특히 노조 이슈가 한번 불붙기 시작하면 중소 협력사 입장에서는 대응 여력이 제한적이라 곤혹스러워하는 곳들이 많다”고 전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노사 협상 타결이 오히려 협력업체 현장의 기대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 노사 갈등 과정에서 수억원대 성과급 규모와 임금 체계가 연일 외부로 알려지면서 협력사 직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같은 분위기는 삼성전자 협력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앞서 SK하이닉스 청주 사업장에서는 반도체 물류 업무를 담당하는 협력사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성과 배분 문제를 제기하며 단체교섭과 법적 대응에 나선 바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피앤에스로지스지회는 SK하이닉스를 상대로 원청 교섭을 요구하며 집회를 이어갔고, 단체교섭 요구 공문과 내용증명까지 발송했다. 노조 측은 “원·하청 간 임금과 성과급 격차가 커지면서 하청 노동자들의 박탈감과 분노도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노조 측은 도급계약 구조상 협력업체가 독자적으로 처우 개선을 결정하기 어렵다며 원청 책임론까지 제기했다. 업계에서는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원청의 교섭 책임 범위를 둘러싼 대표 사례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중소기업계에서도 삼성전자 노사 협상 타결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씁쓸한 반응도 적지 않다.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통해 “삼성전자 노사가 극한 상황까지 가지 않고 협상을 타결한 점은 다행”이라면서도 “수억원대 성과급 논쟁 속에서 협력 중소기업들에는 과연 정당한 대가와 보상이 이뤄졌는지 의문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은 수천 개 협력업체와 소재·부품 중소기업이 원팀으로 함께 일궈낸 성과”라며 “협력사의 기여와 역할 역시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보상 격차 확대가 인력난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지금도 중소기업은 사람 구하기가 어려운데 대기업 성과급 이슈까지 커지면 인재 쏠림 현상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며 “원청의 성과급 논란이 협력업체 현장 기대치까지 끌어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