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주식 기반 성과 보상 모델이 최종 관문을 넘었다. 노사 양측이 한 발씩 양보해 도출한 합의안으로 설계된 대규모 자사주 성과급 모델이 조합원 73.7%의 동의를 얻었다. 현금이 아닌 주식 보상 방식으로 노조는 상한 없는 추가 보상 통로를 확보했고 사측은 현금 유출 부담과 성과주의 훼손 논란을 줄였다는 평가다.
파업과 긴급조정권 발동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지만 한국 사회에 남긴 숙제는 적지 않다. 정부에서도 이번 사례를 단순히 개별 기업의 성과급 문제가 아니라 대기업 전반의 초과이익을 어떻게 분배할지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으로 평가했다. 재계는 노사 협의를 통해 현금성 성과급 요구를 장기 주식보상으로 전환한 사례라는 점에서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성과급 아닌 '이익배분 철학' 논쟁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전자의 노사 합의를 단순한 임금·성과급 협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이지만 연세대 교수는 “이번 논의가 성과급 문제로 명명된 것부터 부적절하다”며 “성과급은 이미 임금체계 안에 포함된 개념이고 영업이익에서 얼마를 떼어가느냐는 논의는 성과급이 아니라 이익 배분 철학의 문제”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번에는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에서 이례적으로 영업이익이 막대하게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성과급과는 별도의 성과 보상 체계가 논의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삼성전자가 노조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하면서도 성과 보상을 현금이 아닌 주식으로 지급하기로 한 것도 재계와 산업계에 미칠 장기적 영향을 고려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교수도 현금 성과급 논쟁을 장기 주식보상 체계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송 교수는 “삼성전자가 결과적으로 주식으로 문제를 풀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며 “10년이라는 장기 제도화가 포함된 것은 노조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에도 영업이익이 크게 늘어날 경우 같은 논쟁이 반복될 수 밖에 없었던 만큼 장기 성과보상 체계를 마련한 것은 불가피하면서도 긍정적인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파업이라는 국가 경제적 파국을 막는 동시에 노조 모두 실리를 챙겼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노조는 기존 성과인센티브(OPI) 상한을 폐지하지는 못했지만 사실상 지급 한도가 없는 반도체 특별경영성과급이라는 통로를 확보했다. 반도체 업황이 좋고 삼성전자 주가가 오를수록 조합원이 받는 자사주 가치도 커진다.
사측은 기존 OPI 체계와 사업부별 성과주의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영업이익 일부를 현금으로 직접 나누는 부담을 줄였다. 현금 유출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임직원 보상을 장기 기업가치와 연동하는 효과도 얻었다.
◇이사회 아닌 노사 협의 통해 주식 지급…재계, 경영 주도권 역전 우려
주요 대기업 노조는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지급하라는 요구를 반복하고 있다. 삼성전자 사례는 이런 요구에 대해 현금이 아닌 자사주라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동시에 노동계가 영업이익에 연동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선례로 활용될 여지도 남겼다.
실제 글로벌 빅테크 기업은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PSU(성과조건부주식) 등 주식보상을 핵심 인재 유지와 장기 기업가치 제고 수단으로 삼고 있다. 삼성전자도 앞서 이사회 결의를 통해 장기성과인센티브(LTI) 일부를 주식으로 지급하는 방식의 주식 기반 성과보상 체계를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최종 가결된 반도체 특별경영성과급은 이사회가 아닌 노사 협의로 설계된 집단적 자사주 보상이라는 점에서 기존 임원 중심 주식보상과는 다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 교수는 “다른 기업들이 마찬가지 제도를 도입하기에는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며 “삼성전자가 선례를 만들었지만 다른 기업으로 확산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재계가 부담을 느끼는 이유다. 기존 주식보상은 주주의 대리인인 이사회가 임원 보상 체계를 설계하고 승인하는 방식으로 운용됐다. 삼성전자 노사 합의는 직원들이 노사 협상 테이블에서 초과이익 배분을 직접 요구해 관철한 결과물이다.

재계 입장에서는 보상 결정 권한이 이사회에서 노사 협의로 넘어갔다는 위기감이 크다. 삼성전자의 선례가 다른 기업으로 번질 경우 경영 주도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TSMC 직원들은 최근 회사가 역대 최대 실적을 내고 있음에도 보너스를 삭감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알려지자 소셜미디어를 통해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했다. TSMC는 이틀 만에 공식 입장을 내고 진화에 나섰다.
국내 증시의 특수성도 재계가 주식 기반 이익 배분 논의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요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주식보상이 직원과 주주의 이해관계를 장기적으로 일치시키는 장치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국내 상장사의 경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호재에도 주가가 충분히 반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 확대와 같은 주주환원 정책은 최근에서야 기업가치 제고 수단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주주 단체가 삼성전자의 자사주 지급에 반발하고 나선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단기적으로 주주가치를 훼손시킨다는 문제 의식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주가 상승 기대가 맞물린 특수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사주 보상이 조합원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면서 “업황 변동성이 크거나 주가 상승 여력이 제한적인 기업에서는 같은 방식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