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차이나] 셋톱박스 사라지는 시대…TV는 왜 점점 외면받나

한때 TV는 모든 가정의 중심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시작되기를 기다렸고, 저녁 식사 후에는 온 가족이 함께 드라마나 예능을 시청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셋톱박스와 TV를 각각 켜야 했고, 리모컨도 두 개를 사용해야 하는 등 다소 번거로웠지만, 이는 당연한 시청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스마트 TV 보급과 인터넷 기술 발전으로 셋톱박스 존재감은 점차 줄어들었다. 스마트 TV에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거나 스마트폰 화면을 TV로 전송하는 방식이 보편화됐고, 지상파 디지털 방송이나 IPTV 서비스 등 셋톱박스 없이도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다만 이러한 방식은 안테나나 별도 장비를 연결해야 하거나, 인터넷 환경에 따라 화질과 안정성이 달라지는 등 사용 편의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국가광전총국(NRTA)은 '통합 TV'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새롭게 생산되는 TV에는 라이브 방송 수신과 인증 기능이 기본 탑재되며, TV를 켜면 별도의 셋톱박스 없이 곧바로 방송을 시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존 TV 역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나 소형 HDMI 어댑터를 통해 같은 기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며, 셋톱박스는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될 예정이다.

[테크 차이나] 셋톱박스 사라지는 시대…TV는 왜 점점 외면받나

하지만 셋톱박스를 없앤다고 해서 TV 산업이 다시 활기를 되찾을 것이라는 전망은 많지 않다. 실제로 중국 TV 시장은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인다. 2016년 약 500만대를 넘었던 연간 TV 판매량은 2025년 2700만 대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가정 내 TV 일일 사용률 역시 약 70%에서 30% 수준으로 크게 감소했다. 정부의 소비 촉진 정책에도 이러한 흐름은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광고와 복잡한 사용자 인터페이스, 여러 단계 구독 서비스가 TV 기피 현상 원인이라고 지적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이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라고 분석한다. 정부는 부팅 광고를 금지하고, 구독 체계를 정비하며, TV를 켜면 바로 방송이 시작되도록 하는 등 사용 환경을 꾸준히 개선해 왔다. 그럼에도 TV 이용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가장 큰 변화는 콘텐츠 소비 방식 자체에 있다. 과거에는 방송사가 정한 시간에 맞춰 프로그램을 시청해야 했지만, 지금은 숏폼 영상과 OTT 서비스,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시간에 선택해 볼 수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은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고, 알고리즘은 개인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추천한다. 반면에 TV는 여전히 거실에 앉아 시청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경쟁력이 크게 약해졌다.

오늘날 TV 역할도 과거와는 달라졌다. 전통적인 방송을 시청하기보다 게임기를 연결하거나 스마트폰 화면을 미러링하고, OTT 콘텐츠를 감상하거나 대형 모니터처럼 활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다. 실제로 라이브 방송을 꾸준히 시청하는 이용자는 대부분 고령층에 집중돼 있으며, 젊은 세대는 TV를 방송 수신기가 아닌 대형 디스플레이로 인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TV 제조사들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마이크로 LED와 미니 LED, 고주사율 패널, AI 화질 처리 기술 등 새로운 기술 개발을 이어가고 있으며, 가격 경쟁력도 크게 높였다. 그러나 성능 향상만으로는 변화한 소비 습관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셋톱박스 퇴장은 시대 변화의 상징일 뿐이다. TV는 앞으로도 거실의 대형 화면으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겠지만, 방송을 시청하는 중심 기기로서 위상은 이미 모바일과 인터넷 플랫폼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이제 사람들이 TV를 떠난 이유는 시청 환경이 불편해서가 아니라,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전자신문과 36케이알이 공동 기획한 기사입니다.

김현민 기자 min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