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후위기 시대, 미래 생명 가치를 지키는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

[기고]기후위기 시대, 미래 생명 가치를 지키는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

박은식 산림청장 drforest@korea.kr

백두대간 깊은 숲을 걷다 보면 하늘 높이 곧게 뻗은 춘양목을 만나게 된다. 경북 봉화 춘양면 일대에서 자라 이름 붙여진 춘양목은 결이 곱고 강도가 뛰어나 예로부터 우리나라 최고의 소나무로 불리며, 궁궐이나 사찰을 짓는 건축재로 쓰였다.

그러나 그 거대한 춘양목도 처음에는 손끝에 올려놓으면 바람에 날아갈 만큼 작은 씨앗 하나에서 시작됐다. 숲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은 씨앗 하나가 싹을 틔우고 긴 시간을 견디며 뿌리를 내릴 때 비로소 울창한 숲이 된다. 그리고 그 씨앗 안에는 수만 년 동안 이어져 온 생명의 기억과 미래 숲의 가능성이 함께 담겨 있다.

바로 그 춘양목 군락지가 자리한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가 있다. 5월 22일은 '국제 생물다양성의 날'이었고, 5월 30일은 식물 종자 보전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백두대간 시드볼트의 날'이다. 이날에는 기후위기와 자연재해 속에서도 인류의 생명자원을 지켜 미래 세대에 온전히 전하겠다는 숭고한 약속이 담겨 있다.

지금 지구는 전례 없는 속도로 생물다양성을 잃어가고 있다. 기후위기와 서식지 파괴, 무분별한 개발이 이어지면서 수많은 식물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그러나 식물은 단지 숲을 이루는 배경이 아니다. 우리가 먹는 식량과 약, 깨끗한 공기와 물, 그리고 기후의 균형까지 모두 식물과 연결되어 있다. 식물이 사라진다는 것은 결국 인간 삶의 토대가 흔들리는 일이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시드볼트'는 기후위기나 재난으로 식물이 사라지는 상황에 대비해 씨앗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식물종자 금고'다. 현재 전 세계에서 시드볼트를 운영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노르웨이뿐이다. 노르웨이 북극권의 '스발바르 글로벌 시드볼트'가 인류 식량안보를 위한 농작물 종자를 보전하는 시설이라면,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는 야생식물 종자를 영구 보전하는 세계 유일 시설이다.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는 현재 국내외 야생식물 종자 6300여 종을 보관하고 있으며, 2050년까지 전 세계 야생식물 종자의 30%를 보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진도 7.0 이상 강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안전한 시설 속에서 작은 씨앗들은 수십 년, 수백 년 뒤의 미래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는 국제협력에서도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산림청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은 국제식물원보전연맹(BGCI)과 함께 '글로벌 종자보전 사업'을 추진하며, 세계 각국 20개 기관으로부터 야생식물 종자를 기탁받고 있다. 향후 2년간 협력 기관을 60개까지 확대해 나갈 계획으로, 이는 단순히 보관하는 종자의 수를 늘리는 일이 아니다. 국제사회가 대한민국 산림청의 시드볼트를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종자 보전의 공간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기후변화로 국토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놓인 군소도서개발도상국(SIDS) 식물 종자를 우리 시드볼트에서 보전하는 사업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이는 지난해 아부다비에서 열린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총회에서 우리나라가 제안해 채택된 결의문을 실천에 옮기는 구체적인 행동이다. 바다 건너 작은 섬나라의 씨앗과 생명을 대한민국이 함께 지켜낸다는 것은, 우리가 인류 공동의 미래를 지키는 일에 함께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드볼트의 핵심 가치는 '보존'이다. 기탁된 종자는 밀봉된 상태로 안전하게 보관되며, 소유권 또한 기탁자에게 그대로 유지된다. 이는 생물자원을 둘러싼 국제적 갈등과 불신을 최소화하고, 공정과 신뢰에 기반한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원칙이다.

신록이 짙어가는 계절, 우리는 다시 자문해 본다. 미래 세대에게 어떤 숲과 자연을 남겨줄 것인가?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는 그 질문에 대한 대한민국의 가장 확실하고 책임 있는 답변이다. 산림청은 앞으로도 작은 씨앗 하나에 담긴 거대한 생명의 가능성을 믿고, 세계와 함께 미래의 숲과 생명을 지켜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