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숏폼 드라마의 성장이 던지는 과제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숏폼 영상 콘텐츠 이용이 많은 이들의 여가 시간을 삼키기 시작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5 콘텐츠 이용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5년 숏폼 콘텐츠 이용률은 전체 응답자의 58.6%에 달했으며, 다수의 이용자가 거의 매일(66.0%) 이용하고, 하루에도 여러번 이용(33.4%)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숏폼 시청 후 원작 콘텐츠 시청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11.3%에 불과하는 것으로 나타나서, 숏폼 영상 콘텐츠 이용이 연계 소비 형태가 아닌 독립적인 완결 소비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숏폼 영상으로 이용자의 주목이 몰리는 가운데 '틈새 시간'을 타깃으로 하던 콘텐츠의 성장 둔화도 이어지고 있다. 2026년 1분기 카카오 스토리 부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 감소한 1824억원, 네이버 콘텐츠 부문 매출도 1.4% 감소한 4401억원을 기록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전체 게임 이용률은 2022년 74.4%로 정점을 찍은 뒤, 2025년 50.2%를 기록하는 등 꾸준한 감소세를 보였고, 게임을 대체하는 여가활동으로 영상 시청을 선택한 이용자가 86.3%로 나타났다.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5.12). 2025 콘텐츠 이용행태 조사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5.12). 2025 콘텐츠 이용행태 조사

숏폼 영상 콘텐츠에는 여러 장르가 있지만, 독립적인 드라마 콘텐츠 소비의 비중도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2024년 출시된 스푼랩스의 숏폼 드라마 플랫폼 비글루의 월간활성이용자(MAU)는 2026년 약 400% 증가했고, 매출 역시 1년 사이 10배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종 커뮤니티나 블로그 등에서 숏폼 드라마 시청에 대한 후기들도 점차 누적되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짧은 예고편 클립을 보고 관심을 갖게되어 전체 콘텐츠를 소비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자극적인 전반부를 무료로 공개하고, 이를 통해 촉발된 관심을 토대로 남은 회차를 유료 결재로 시청하게 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흥미로운 현상은, 숏폼 드라마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중국의 콘텐츠들이 여러 동영상 플랫폼에 전체 회차가 공개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포화된 중국 시장을 넘어 전 세계 시장으로 진출을 확대하려고 하는 산업적 필요 속에서, 느슨한 저작권 관리 속에서 영상의 확산과 시청 경험 확대가 이뤄지는 양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유료 결제를 우회하는 불법 유통이란 점에서 산업적으론 위협 요인이지만, 해당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글로벌로 확장되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성장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양상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양상을 통해 그동안 축적된 중국의 숏폼 드라마 생태계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숏폼 드라마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리서치앤마켓에 따르면, 전 세계 숏폼 드라마 시장 규모는 2024년 약 65억 5,000만 달러에서 2025년 72억 3,000만 달러로 성장했으며, 향후 연평균 10.6%씩 성장해 2032년에는 약 146억 9,000만 달러(한화 약 21조 5,800억 원) 규모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숏폼 드라마 성장을 주도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일단 양적 성장이 두드러진다. 중국의 숏폼 드라마 시장은 2024년에 시장 규모가 504억 4,000만 위안 대를 기록하며 중국 영화 시장의 연간 전체 박스오피스 매출액인 470억 위안을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광전총국으로부터 발행 허가를 취득한 숏폼 드라마 편수는 2023년 502편에서 2025년 691편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양적 성장의 단계를 넘어, 이제 질적 성장을 향한 방향성도 확인할 수 있다. 중국 국가광전총국은 2024년 2월, 숏폼 드라마에 대한 지침을 발표하고 내용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소위 '막장'이라 할 수 있는 선정적이고 저속한 내용을 통제하고, 예술적 품질을 강화하는 방향의 개선을 국가적으로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에서도 숏폼 드라마 시장 성장에 대한 대응 노력은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릴숏, 드라마박스 등 중국계 플랫폼들이 한국 시장에 완전히 안착하진 못한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의 시장 참여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크래프톤의 투자를 받은 스푼램스의 비글루, 레진코믹스의 레진 스낵 등이 대표적이다. OTT 플랫폼인 티빙도 모바일에서 숏폼 콘텐츠 유통을 확대하고 있고, 네이버웹툰도 숏폼 애니메이션 서비스 '컷츠'를 출시한 바 있다. 제작 측면에서도 이병헌, 이준익 감독 등이 참여하기 시작하는 등 기존 영화와 드라마 분야의 전문 인력의 참여 사례가 확대되고 있다.

숏폼을 비롯한 중국 드라마의 영향력 확대는 국내에서도 이미 그 징조를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의 역사 로맨스 드라마 '축옥: 옥을 찾아서'는 지난 4월 공개 직후 넷플릭스의 대한민국 톱10 시리즈 순위에 6위에 올랐다. 숏폼 드라마 전문 제작사로서 두각을 드러내는 사례도 등장했다. 밤부네트워크의 〈해야만 하는 쉐어하우스〉는 드라마박스가 서비스하는 전 국가에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기존에 가로형 '웹드라마'를 기반으로 성장했던 와이낫미디어도 기존의 인기 작품의 스핀오프인 〈청담국제고등학교 - 미술반〉을 세로형 숏폼 드라마로 제작하는 등 IP확장의 관점에서 숏폼 드라마 성장에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숏폼 드라마의 성장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시장 변화의 대응의 관점으로 본다면 짜투리 여가 시간의 틈새를 둘러싼 경쟁에서 주류로 부상하는 영상 기반의 서사형 콘텐츠라는 영역의 경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시장 변화 속에서 한국의 콘텐츠 산업 생태계의 약점과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한국의 영상 제작사들이 숏폼 시장에 관심을 갖게 된 가장 큰 배경은 롱폼 기반의 영상 산업의 구조 변동이다.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 중심의 플랫폼 변화 속에서 과거에 '드라마 왕국'을 가능하게 했던 방송 분야에서의 드라마 초과 생산의 기회는 사라지고 있다. 글로벌 지향의 대형 작품으로의 제작 요소 시장의 쏠림이 심화되는 가운데, 허리에 해당되는 중간 규모 작품이 제작될 기반이 위축되면서 작은 규모에서의 효율을 강조하는 시장으로의 이동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영상 콘텐츠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게임과 웹툰 산업의 성장 둔화가 보여주듯이, 이용자의 시간을 둘러싼 경쟁은 개별적인 콘텐츠 시장의 경계를 넘어서며 심화된다. 여기에 더하여 중국의 '추격'이란 관점을 더해진다면 위기의 심각성은 더 높아진다. 이미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중국의 '우회적 추격(detour)'을 통해 한국 게임 기업들이 시장의 주도권을 넘겨준 사례가 있다. 중간 영역에서의 일종의 '가성비'로 승부하던 한국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이 시장 구조의 재편 속에서 샌드위치처럼 '끼인' 듯이 약화되는 현상이 점차 분야별로 확대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영상 콘텐츠 산업 생태계 저변의 '저력'에 대해 조금 더 객관적인 현실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중국 숏폼 드라마에 대해 그 자체로 하나의 '밈'이 될 정도로 조금은 황당하고 낮은 품질의 콘텐츠라는 인식이 많았고, 이는 여전히 어느 정도 사실이다. 공급 과잉 속에서 저품질 콘텐츠가 난립하고 있고, AI 제작 기술 도입이 이러한 저품질 콘텐츠의 난립을 부추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압도적인 물량의 제작 경험 속에서 쌓이는 '숙련'이다.양적인 변화가 끊임없이 축적되면, 어느 순간 질적인 도약이 일어나는 '양질전환'의 순간이 도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한국 넷플릭스에서 상위권에 진입하며 인기를 얻은 사극 로맨스 드라마 '축옥'이 대표적이다. 아이치이, 모아(MoA) 등 중국 드라마를 유통하는 전문 플랫폼의 MAU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웨이브 등 국내 OTT 플랫폼에서도 중국 드라마는 분명한 매니아 층을 형성하는 장르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영상의 완성도를 판단하는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고장극 분야에서 중국이 도달한 시각적 기술력과 그래픽 수준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풍부한 배우 생태계와 내부의 치열한 경쟁 압력은 콘텐츠의 전반적인 수준을 아래에서부터 밀어 올리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 미디어 업계가 뛰어드는 숏폼 제작은 건강한 하부구조를 자발적으로 구축하는 과정이라기보다, 무너져 가는 롱폼 드라마의 제작 환경 속에서 마지못해 선택한 대안에 가깝다. 약해진 생산 기반의 돌파구를 더 취약한 하위 제작 환경에서 찾으려는 시도인 것이다. 이미 여러 장르적 문법에서 중국의 추격과 벤치마킹이 진전된 상황에서, 우리는 오히려 아시아 대중문화의 흐름 속에서 중국이 발견하고 선점한 '세로형 숏폼 문법'을 뒤늦게 학습하고 추격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 역시 뼈아픈 부분이다. 이미 몇몇 국내 드라마에서는 중국의 숏폼 드라마가 소환한 과거의 문법을 다시 활용하려는 시도들이 일부 나타난다. 문화적 문법의 '선도'란 관점에서 이미 우리가 '후발국'의 위치에 놓이게 되는 상황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한국 소프트파워'의 경쟁력이라는 자부심이, 사실은 영상 콘텐츠의 제작 기반의 축소와 함께 기초부터 약화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평가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진짜 문제는 지속가능성이다. 영상 콘텐츠 산업은 다행스럽게도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대형' 작품 제작 측면의 경쟁력을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고, 이들의 성과가 '케이컬쳐'의 확산을 통한 선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만 중간 규모의 '허리'가 약해지고 제작의 기회 자체가 축소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대형 작품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숙련'을 계속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 숏폼 드라마로의 이동은 포기할 수 없는 새로운 시장에 대한 대응이란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이미 중국이 경쟁 우위를 확보한 시장에서 효율성과 가성비의 경쟁이란 불리한 게임을 해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러한 '분리된' 시장 대응이 이어질 경우, 현재의 성과를 지탱하는 영상 산업 생태계의 건상성의 토대 자체가 무너질 우려도 있는 것이다.

분명 숏폼 드라마의 성장은 새로운 시장의 발견이며, 이용자의 여가 시간의 지형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기에 적극적인 대응으로 우리만의 전략적 포지션을 획득해야 할 필요도 높다. 본격적으로 우수한 인재가 참여하며 콘텐츠 측면의 성과가 나타나는 흐름, 국내 플랫폼의 시장 확장노력이 확대되는 흐름도 긍정적이다. 다만, 우리의 노력이 산업의 취약성을 높이는 효율화만을 향한 방향이라면, 그 결과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후발주자이자, 제한된 자원을 통해 경쟁하며, 기존 산업의 균열을 함께 관리해야 하는 복합 위기 상황이란 현실 인식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당면한 근본적인 과제는 숏폼으로의 이행이란 단순한 콘텐츠 '형식'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을 넘어, 국내 미디어 산업 생태계 전체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중국식 제작 패러다임이 보여준 엄청난 효율성과 기술적 적응력을 눈여겨보되, 우리의 강점인 서사적 완성도와 밀도 높은 캐릭터 빌딩 역량을 유지할 수 있는 건강한 생산 기반의 복원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숏폼 드라마 산업에서의 기회를, 영상 콘텐츠 산업, 더 나아가 IP중심으로 연계된 전체 콘텐츠 산업의 성장으로 연결할 수 있는 전략적이고 유기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지금은 케이컬쳐의 성취에 취해있을 시기가 아니라, 다가올 복합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콘텐츠 산업의 기초 체력을 다시 다져야 할 시기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sky153@knou.ac.kr

〈필자〉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디어-콘텐츠 정책 분야와 미디어 역사 분야에서 다수의 연구를 수행해왔다. 문화정책 분야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콘텐츠 산업 현장의 변화를 정책의 언어로 담아내는 연구를 진행해 왔다. 주요 연구로는 '한국 신문의 사회문화사'(공저, 2013), '언론사 문화사업의 역사와 사회적 의미'(공저, 2014), '콘텐츠 산업 트렌드 2025'(공저, 202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