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정부 비상경제대책위원으로 참여했던 3선 의원 출신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오전 11시 50분께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91세.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의 집안은 큰아버지 장병준(임시정부 외무부장) 선생이나 부친 장병상 선생, 작은아버지 장홍염(광복군 전남지구대 참모장, 제헌 국회의원) 선생 등 집안 전체가 항일 운동을 한 호남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가문이다.
고인은 광주고, 서울대 법대를 나온 뒤 1956년 고등고시 행정과(7회)를 거쳐 국세청 공무원으로 일했다. 1973년 국세청 차장, 1979년 한국주택은행장, 1985∼1995년 서울대 법대 강사를 거쳐 1992년 14대 국회에서 민주당 전국구로 금배지를 단 뒤 15, 16대는 서울 서대문을 지역구에서 연거푸 당선되는 등 내리 3선을 했다. 2001~2002년에는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다. 원내 교섭단체 구성을 도우려고 자민련으로 옮긴 적도 있지만, 시종일관 'DJ(김대중)맨'이었다. 1992년 정치 입문 직후 민주당 정책위의장에 임명됐을 만큼 DJ의 신임이 두터웠다.
장 전 장관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불거지기 1년 전 이를 경고했던 인물이다.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의원이던 1996년 10월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환율과 수출, 외채화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며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시 그는 “엔저현상의 지속으로 원화가 지나치게 고평가되는 바람에 자동차 조선 등 중화학제품의 수출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며 “단기대책으로 금리인하와 환율인상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인위적으로 환율을 방어하지 말고 환율상승을 유도, 수출경쟁력을 높임으로써 경상수지 적자폭을 줄이자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 같은 주장은 물가상승과 기업의 환차손을 이유로 철저히 무시됐다.
그로부터 1년여 뒤인 1998년 1월 재경원 강만수 차관은 비상경제대책위에 참석해 “반도체 특수에 눈이 멀어 환율평가시기를 놓쳤다. 상부에 환율을 자율조정하자고 건의했으나 묵살당했다”고 보고했다. 고인의 지적이 옳았음이 1년여가 지나, 그것도 모라토리엄(대외채무지불유예) 직전에 가서야 입증된 셈이다. 회의가 끝난 뒤 고인은 “환율과 무역수지는 큰 상관이 없다고까지 강변하더니…”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1999년초엔 'IMF 환란특위 위원장'도 맡았다.
장남은 경제학자인 장하준 런던대 교수, 차남은 과학철학자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이다. 장하진 전 여성가족부 장관,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 장하원 전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 등이 조카들이다.
유족은 부인 최우숙씨와 2남1녀(장하준·장연희·장하석), 사위 임수빈(LKB평산 변호사), 며느리 김희정·그레첸 시글러씨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발인 2일 오전 8시.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