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판 흔든 유튜버…유튜브서 시작한 공포영화, 美 박스오피스 1위 찍어

영화 '백룸' 스틸.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리바이브콘텐츠(주)
영화 '백룸' 스틸.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리바이브콘텐츠(주)

유튜버가 제작한 저예산 공포 영화들이 북미 극장가를 휩쓸며 할리우드 투자·배급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인터넷 밈(MEME)과 팬덤을 기반을 한 신예 감독들의 활약에 할리우드 주류 업계도 긴장하는 모양새다.

1일 월스트리트저널(WSJ)·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독립영화사 A24의 신작 공포 영화 '백룸(Backrooms)'이 개봉 첫 주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약 8150만달러(약 1227억원)의 수익을 올리며 1위로 데뷔했다.

이는 역대 속편이나 소설 원작이 없는 순수 창작 공포 영화 중 최고 개봉 성적이다. 비슷한 시기 개봉한 픽사 최신 애니메이션 '호퍼스'와 인기작 후속편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를 뛰어넘는 성적이기도 하다.

배급사 조사에 따르면 백룸 예매자의 약 86%가 35세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튜버가 젊은 팬덤을 극장가로 이끌면서 할리우드 영화사 경영진들이 오랫동안 '기존 유명 브랜드와 프랜차이즈만이 관객을 모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믿어왔던 흥행 공식이 깨지고 있다.

영화 '백룸' 스틸.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리바이브콘텐츠(주)
영화 '백룸' 스틸.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리바이브콘텐츠(주)

백룸의 아이디어는 지난 2019년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포찬(4chan)'에 올라온 형광등 불빛으로 가득 찬 빈 방의 섬뜩한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다. 이 사진은 온라인 서브컬처를 형성하며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당시 10대 소년이었던 케인 파슨스가 이를 바탕으로 유튜브에 공포 영상 시리즈를 제작하는 계기가 됐다.

제작비 1000만달러(약 150억원)가 투입된 이 영화는 끝없이 펼쳐진 가상 미로 공간을 다룬 작품이다. 동시기 개봉한 헐리우드 대작 '스타워즈' 시리즈의 신작 '만달로리안과 그로구' 성적과 맞먹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파슨스 감독은 지난 2022년, 17세 나이로 유튜브에 '백룸' 시리즈를 처음 선보였다. 온라인 괴담에서 영감을 얻은 해당 시리즈는 누적 조회수 2억회를 돌파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A24를 통해 영화화가 이뤄졌다. 특히 영화 제작에 '데드풀과 울버린'의 숀 레비 감독과 공포영화의 거장 제임스 완 등이 대거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올해 유튜브 스트리밍 플랫폼 출신 감독들이 상업적 성공을 거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달에는 컴캐스트 산하 포커스 피처스가 개봉한 26세 유튜버 커리 바커 감독의 영화 '옵세션(Obsession)'이 북미에서만 1억 470만 달러(약 1577억원)의 수익을 기록하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특히 제작비가 75만 달러(약 11억원)에 불과한 초저예산 영화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영화 '옵세션' 스틸. 사진=Focus Features
영화 '옵세션' 스틸. 사진=Focus Features

옵세션은 주말이 지날수록 티켓 판매량이 오히려 증가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는 1997년 영화 '타이타닉' 등 메가 히트작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이례적인 흥행 추이”라고 짚었다.

개봉 한 달이 지났지만, 옵세션은 관객이 연일 늘어나 지난 주말 '만달로리안과 그로구'를 밀어내고 북미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다. 반면 만달로리안과 그로구는 전주 대비 69% 급감한 2500만 달러(약 376억원)에 그쳐 대조를 이뤘다.

앞서 1월에는 구독자 3870만명을 보유한 유튜버 '마키플라이어(Markiplier)'로 활동 중인 마크 피쉬바흐가 감독·주연을 맡은 영화 '아이언 렁(Iron Lung)'이 팬들의 자발적인 '풀뿌리 상영 요청 캠페인'에 힘입어 AMC, 리갈 등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 전역으로 배급을 확대되기도 했다. 이 영화는 총 4140만 달러의 수익을 거뒀다.

다음 주 개봉을 앞둔 유튜브 애니메이션 원작 영화 '어메이징 디지털 서커스: 더 라스트 액트(The Amazing Digital Circus: The Last Act)'는 벌써 사전 예매액만 900만 달러(약 135억원)를 돌파했다.

과거 영화 산업의 가장 큰 위협으로 여겨졌던 유튜브,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 등의 인터넷 플랫폼이 이제는 할리우드의 가장 중요한 '소재 공급처'가 된 셈이다.

백룸을 공동 제작한 체르닌 엔터테인먼트의 코리 아델슨 총괄 책임자는 “기존의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서사에서 벗어나, 젊은 관객들에게 더욱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다가가는 거대한 흐름을 목격하고 있다”고 이 현상에 대해 진단했다.

영화 관객 분석 전문가인 케빈 고츠는 “Z세대는 과거 세대에 비해 1년에 평균 2편 정도 영화를 덜 본다”며 “이는 영화사들이 그들의 온라인 문화 경험을 반영한 콘텐츠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관객들은 이제 자신들이 온라인에서 유기적이고 자발적으로 발견한 콘텐츠를 스크린에서 보고 싶어 한다”고 분석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