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은 늙기 쉽고 배움은 이루기 어렵다는 이 말은 AI 시대의 제조 현장에도 묘하게 들어맞는 것 같다. 설비는 빨리 낡고, AI의 학습은 생각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더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쩌면 그 다음 구절일지 모른다.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찰나의 시간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이 말은, 제조 AI가 놓치기 쉬운 '순간의 감각'까지 학습해야 한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그런데 제조 현장에서 찰나는 시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 찰나가 실제로 나타나는 위치에 가까이 다가가야 비로소 AI가 배울 수 있는 신호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용접 전류가 흔들리고, 모터 전류가 미세하게 변하는 신호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 순간을 놓치면 나중에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모아도 원인을 찾기 어렵다. 산업용 AI의 어려움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부족한 데만 있지 않다. AI가 배워야 할 감각이 현장 설비 안에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래서 산업 AI가 어려운 것 아닐까?
사람을 위한 데이터와 AI를 위한 데이터
AI를 도입한다고 하면 기존 MES, PLC, 센서 데이터를 모아 모델을 학습시키는 일을 먼저 떠올린다. 물론 그것이 출발점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기존 데이터는 대개 사람이 관리하기 위해 모은 데이터다. 생산량을 확인하고, 설비 운전 상태를 감시하고, 이상 발생 뒤 원인을 추적하기 위한 데이터가 많다. 하지만 사람이 보기 좋은 데이터와 AI가 원인을 구분하기 좋은 데이터가 같을까?
사람에게는 1초 단위의 변화가 충분해 보일 수 있지만, 공정 이상은 그보다 훨씬 짧은 시간 안에서 지나갈 수 있다. 사람이 관리하기 좋은 위치에 붙은 센서가 AI에게도 가장 좋은 위치라는 보장은 없다. 설비 제어에는 충분했던 신호가 품질 원인을 구분하기에는 부족할 수도 있다.
이 차이를 놓치면 AI 도입은 쉽게 겉돈다. 데이터는 쌓이는데 원인은 보이지 않고, 모델은 만들어졌지만 현장에서는 신뢰받지 못한다. 이유는 꼭 AI 모델 하나에만 있지 않다. AI가 배워야 할 신호가 처음부터 충분한 해상도와 위치에서 잡히지 않았을 가능성도 크다.
제조 현장에서 AI의 성능은 알고리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어떤 신호를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읽게 만들었는가가 먼저다. 모델은 바꿀 수 있지만, 현장의 감각 구조는 쉽게 바꿀 수 없다. 그래서 디지털리트로핏은 단순히 낡은 설비에 센서를 붙이는 일이 아니라, AI가 배울 수 있는 데이터 구조를 만드는 일에 가까워진다.
작용점 전환이 필요한 때
이제 사람이 관리하기 쉬운 위치만으로는 부족하다. 유지보수성과 안전성을 만족하는 범위 안에서, AI가 원인을 가장 잘 구분할 수 있는 위치에 가까워져야 한다. 이 말은 기존 센서 배치가 틀렸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이 직접 관리하기에는 그 위치가 가장 합리적이다. 제어반과 연결하기 쉽고, 유지보수가 가능하며, 운전자가 상태를 확인하고 판단하기에 좋은 위치가 중요하다. 사람이 판단하는 시대에는 사람이 판단하기 좋은 위치가 최적의 위치였다.
반면 AI가 판단해야 하는 시대에는 기준을 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특히 센서는 사람 기준이 아니라 AI가 원인을 가장 예리하게 구분해낼 수 있는 '작용점(물리적 변화가 일어나는 핵심 위치)'을 지향해야 한다. 사람을 위해 단 센서와 AI의 판단력을 높이기 위해 다는 센서는 목적부터 다르다. 목적이 다르므로 때로는 기존의 센서만으로는 큰 효과가 없어 새로운 센서 체계를 발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독일 프라운호퍼(Fraunhofer) 연구소의 공작기계용 'smartTOOL'은 '작용점 전환'의 실질적 효용을 보여주는 사례다. 연구진은 고속 회전하는 공구홀더에 센서를 통합해, 공구와 소재가 맞닿는 지점 가까이에서 공정력, 진동, 온도 신호를 취득했다. 2023년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데이터를 학습한 딥러닝 모델은 97.3% 이상의 공구마모 예측 정확도를 보였다. 이는 프라운호퍼가 비교군으로 제시한 기존 간접 계측 방식, 즉 모터 전력·전류나 기계 프레임에서 얻는 진동 데이터 기반의 정확도(약 80% 수준)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특히 이 시스템은 회전 에너지를 활용한 에너지 하베스팅(자가발전)과 무선 통신을 결합해, 외부 전원 없이 자가발전만으로 고품질 데이터를 생성한다. 이 사례는 '작용점 전환'이 단순히 센서 위치를 옮기는 기술적 변경을 넘어, AI가 학습하는 데이터의 근본적인 질을 높이고 지능 구현의 경제성까지 바꿀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smartTOOL이 신설 또는 고도화 장비에서 그 감각을 구현한 사례라면, 이미 오랫동안 가동된 노후 설비에서는 같은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필자가 적용했던 용접 설비 디지털리트로핏은 작용점 전환이 불량 검출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 또 다른 사례다. 대상 설비는 20년 이상 가동된 노후 설비로, 디지털화가 극도로 어려운 구조였다. 초기에는 열화상 카메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AI 모델을 적용해 보았으나, 불량 판별 정확도는 약 85% 수준에서 정체되었다. 현장에서 요구하는 품질 기준을 넘기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다시 물리적 작용점을 분석했다. 용접 상태의 본질적 변화는 단순히 표면의 온도 분포만이 아니라, 용접봉과 부재 사이에서 흐르는 '전류의 순간적 변화'에 숨어 있었다. 그래서 단순히 전류값이 아닌, '미분 기반 전류'를 핵심 분석 지표로 설정했고, 미분 전류센서를 개발하였다. 여기에 압력 신호와 열화상 온도 분포 데이터를 결합한 멀티모달 AI 방식을 적용했다.
핵심은 전류의 크기 자체보다, 용접 순간에 나타나는 전류 변화의 기울기였다. 물론 저항용접 품질은 전류, 전압, 가압력, 동저항, 열 분포 등 여러 물리량의 영향을 받는다. 다만 해당 설비와 조건에서는 전류의 순간 변화율이 불량을 구분하는 데 가장 민감한 특징값 중 하나로 나타났다. 열화상만 보던 AI는 약 85%에서 멈췄지만, 전류 변화율과 압력, 열화상 데이터를 함께 읽기 시작하자 불량 탐지 정확도는 98.1%까지 올라갔다. 이는 단순히 AI 모델을 바꾼 결과가 아니었다. AI가 읽어야 할 작용점과 시간축을 다시 잡으면, 데이터의 품질 자체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오재근의 감각지능] DX와 디지털리트로핏(하), AI가 배워야 할 찰나의 감각](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06/05/news-p.v1.20260605.847f652241bb40e6b3d1d03018092c56_P1.png)
이 관점은 디지털리트로핏의 성격을 바꾼다. 낡은 설비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센서나 장치를 붙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어디에 붙일 것인가, 무엇을 읽을 것인가, 어느 주기로 읽을 것인가가 먼저 정해져야 한다. 즉 제조 AI가 배울 수 있는 감각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일로 바뀌므로 처음부터 AI 적용까지 염두에 두고 구현하는 'AI 지향 리트로핏'이어야 한다.
'AI 지향 리트로핏'은 AI만 덧붙이는 일이 아니다
노후 설비라 할지라도 AI를 전제로 설계된 디지털리트로핏이 결합되면, 비용 절감의 대상에서 수익성 개선의 대상으로 바뀔 수 있다. 기존 리트로핏이 주로 설비 수명 연장, 에너지 절감, 유지보수비 절감처럼 비용 방어 논리로 설명되었다면, 'AI 지향 리트로핏'은 불량률 감소, 공정 편차 축소, 금형·베어링 상태 예측처럼 수익성과 직접 연결되는 항목까지 개선의 대상으로 끌어올린다.
디지털리트로핏이 노후 설비에 감각과 신경을 이식하는 일이라면, 'AI 지향 리트로핏'은 그 감각과 신경이 AI의 판단에 가장 유리하게 작동하도록 센서의 위치와 구조, 신호처리 방식, 데이터 취득 주기, 그리고 품질 결과와의 연결 구조까지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용접설비 사례의 의미는 단순히 AI 성능이 좋아졌다는 데 있지 않다. 작용점과 시간축을 바꾸자, 같은 현장에서도 AI가 배울 수 있는 정보의 질이 달라졌다. 물론 이 사례가 모든 설비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점만은 분명하다. AI가 판단하려면 먼저 유효한 판단 데이터가 있어야 하고 때로는 이 데이터는 인간이 보기 쉬운 데이터가 아닌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감가상각이 끝난 설비가 AI 투자처가 될 때
디지털리트로핏의 경제성도 이 지점에서 다시 계산된다. 보통 에너지 절감, 정비비 절감, 설비 수명 연장이 주된 효과로 설명된다. 그러나 'AI 지향 리트로핏'으로 들어가면 ROI의 범위가 넓어진다. 불량률, 조건 편차, 작업자별 품질 차이, 예열 시간, 금형 상태, 베어링 열화, 공정 흔들림 같은 항목이 비로소 판단 가능한 데이터로 바뀌기 시작한다.
디지털리트로핏은 그 변화를 위한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AI가 현장에서 잘 작동하려면, 미묘한 신호 하나조차 놓치지 않는 체계가 먼저 갖춰져야 한다. 머신러닝의 기본 원칙인 'GIGO(Garbage In, Garbage Out)'처럼, 입력이 빈약하면 지능도 빈약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제조 AI가 배워야 할 '정직한 감각'은, 지나가는 찰나를 놓치지 않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오재근 | 코아칩스 대표이사
국내 최초 SAW 기반 무전원·무선 센서 개발자로, 센서·에너지 하베스팅·산업용 무선 계측 분야를 25년 이상 연구해왔다. '표면탄성파(SAW)를 이용한 에너지 포집형 무전원·무선 센서' 연구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SAW 무전원·무선 온도 센서 및 극한 환경용 에너지 하베스팅 무선 센서 등을 개발·제품화했다. 기아자동차 연구원, 호서대학교 교수를 거쳐 2007년부터 코아칩스를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무전원·무선 센서, 에너지 하베스팅 무선 센서 및 IIoT 센서를 기반으로 디지털 리트로핏, 온디바이스 AI를 연결한 제조 DX의 현실적 적용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소성렬 기자 hisabis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