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초고령사회, 'HaaS' 전략으로 한·일 에이지테크 주도권을 잡자

이강호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이강호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한국과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에이지테크(Age Tech) 분야에서 양국이 전략적으로 협력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지 않겠습니까?” 지난 5월 도쿄 한일경제인회의에서 일본 기업인이 던진 이 질문은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인구 절벽, 돌봄 인력 대란, 의료 재정 파탄이라는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 첨단 기술로 해답을 찾고자 하는 양국 경제계의 절박한 공감대였다.

한국은 2025년 고령인구 1,000만 명 시대로 초고령사회에 본격 진입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50년까지 고령인구는 지속 증가한다. 이는 에이지테크 제품 및 서비스의 거대한 '수요 엔진'을 의미한다. 앞서 초고령사회를 경험한 일본도 노인 인구 비율이 30%에 육박하며 관련 비용과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양국은 위기 극복의 동반자이자 미래 산업 시너지를 낼 최적 파트너다.

현재 글로벌 AI 생태계는 미·중 거대 빅테크가 주도한다. 그러나 범용 거대언어모델(LLM)만으로는 각국 고유의 문화와 고령층 개개인의 삶에 파고드는 '돌봄' 문제를 완벽히 풀기 어렵다. 노인 돌봄은 언어 맥락, 미세한 감정 변화, 거주 환경의 특수성이 얽힌 고도의 복합적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범용 AI의 한계를 넘어 '에이지테크' 특화 영역에서 주도권을 쥘 전략적 모멘텀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한 핵심 전략은 'HaaS'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수많은 SaaS 기업이 등장했으나, 빅테크 모델이 고도화될수록 단순 소프트웨어 기업은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HaaS는 이 한계를 돌파할 유일한 열쇠다. 건강(Health), 인간(Human), 가정(Home)을 개인화된 라이프로그 데이터와 결합한 융합 모델이다. 고령자의 목소리 톤을 분석해 외로움을 진단하고 교감하는 보이스 AI(Human), 생체 정보를 모니터링해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시스템(Health), 행동 패턴에 맞춰 주거 환경을 제어하는 스마트 홈(Home)이 실시간 연결돼 최적의 케어를 제공할 수 있다. 하드웨어 판매를 넘어, 실시간 데이터로 '나를 가장 잘 아는 맞춤 돌봄'을 연속 제공하는 것이 HaaS의 본질이다.

한국과 일본은 이 HaaS 모델을 구현하고 실증할 강력한 인프라를 보유했다. 한국은 AI·로봇·바이오 분야의 최고 수준 R&D 역량과 방대한 데이터 실증이 가능한 IT 환경을 갖췄다. 일본은 개호 보험 등 장기 축적된 복지 인프라와 고령 친화적 서비스 경험이라는 막대한 자산을 가졌다. 우리의 첨단 에이지테크 기술력을 일본의 거대 실증 인프라에 접목해 HaaS 중심 연대를 공고히 한다면, 글로벌 에이지테크 시장의 '절대적 표준'을 선점할 수 있다. 생활 데이터가 촘촘히 결합된 HaaS 모델은 미·중 빅테크조차 쉽게 침범할 수 없는 강력한 진입장벽이다. 초고령사회의 최대 난제인 고독사 예방과 정서적 고립 문제도 AI 기반 HaaS로 해결해 '기술이 따뜻하게 인간을 향하는' 최고의 롤모델을 만들 수 있다.

초고령사회는 피할 수 없다. AI 기술을 비롯한 첨단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국가 경쟁력이 갈리는 시대다. 한·일 양국은 각자의 강점을 결합해 고령층이 기술 혜택의 주인공이 되는 세상을 선도해야 한다. 미·중 거대 기업이 진입하기 어려운 초개인화된 일상 케어 영역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

이제는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때다. 한국의 혁신 기술과 일본의 데이터를 결합해 HaaS 기반의 독보적 모델을 고도화하고, 동남아와 유럽 등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에이지테크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초고령사회를 인구위기가 아닌 새로운 기회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우리 세대의 소명이자 가장 확실한 미래전략이다.

이강호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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