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K뷰티의 다음 10년, 큐레이션의 시대로

최인석 레페리 대표
최인석 레페리 대표

K뷰티가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2025년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17조원을 돌파하며 한국 대표 수출 품목으로 올라섰다. 미국 아마존 뷰티 카테고리 상위권에 한국 브랜드들이 자리 잡았고, 일본에서는 한국 화장품 전용 매대가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한국은 이제 명실상부한 글로벌 뷰티 산업의 중심에 서 있다.

지난 13년간 뷰티 크리에이터와 브랜드를 연결하며 이 산업의 성장을 현장에서 지켜봐 온 필자는, 지금이야말로 K뷰티가 '확산의 시대'에서 '큐레이션의 시대'로 진화하는 변곡점에 서 있다고 본다. 많은 브랜드가 글로벌 무대에 오르고 있는 지금,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어떤 브랜드를, 어떤 스토리로, 어떤 방식으로 세계에 소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국가가 향후 10년의 뷰티 산업을 이끌게 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산업 대국들의 문법'이다. 프랑스는 원산지 통제 명칭(AOC) 제도로 와인을 등급별로 분류하고 국가가 공식 라벨링해 전 세계 소비자가 프랑스 와인을 선택할 때 신뢰할 수 있는 지도를 제공한다. 생산 과잉으로 글로벌 가격이 흔들릴 조짐이 보이면,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초과 생산분을 매입해 폐기하는 수준까지 개입한다. 자국 대표 산업을 개별 기업에만 맡기지 않고, 국가가 산업 전체 가치를 설계하고 지켜내는 것이다. 한국 화장품 산업은 이미 규모 면에서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이제 'K뷰티'라는 이름값 자체를 국가적 자산으로 전략적으로 관리할 시점에 도달했다.

레페리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K-뷰티 셀렉트스토어' 모델을 구축해왔다. 단순한 편집숍이나 팝업스토어가 아니라, 검증된 브랜드만이 K뷰티 얼굴로 해외 시장에 설 수 있도록 설계된 '큐레이션 인프라'다. 레페리는 한국 뷰티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추천과 언급을 전수 조사해 정량화한 자체 지표 LSI(Leferi Selects Index)를 운영한다. 특정 브랜드가 뷰티 크리에이터 생태계 안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읽어내는 한국 유일 인프라다. 정량 데이터와 크리에이터의 정성적 추천이 결합해 '한국 뷰티 생태계가 실제로 신뢰하는 브랜드'만이 셀렉트스토어에서 소개된다.

지난 4월 도쿄 오모테산도에서 아마존 재팬과 공동 개최한 '셀렉트스토어-오모테산도 도쿄'는 이 모델이 국경을 넘어 작동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오프라인에서 선별된 K뷰티를 직접 체험하는 동시에, 동일한 브랜드들이 아마존 재팬 특별전에서 판매되는 온·오프라인연계(O2O) 구조로 설계됐다. 개별 브랜드의 각자도생식 해외 진출이 아닌 '검증된 K뷰티 공동체'의 공동 진출, 일회성 팝업이 아닌 글로벌 이커머스 인프라와 결합된 지속 가능한 구조로 하나의 민간 기업이 'K뷰티 해외 진출 패키지'를 완성해낸 사례다.

민간의 이러한 시도가 더 큰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산업 공동체와 사회 전체의 관심이 함께 모여야 한다. 필자는 두 가지 방향을 제안하고 싶다.

첫째, 'K뷰티'라는 이름값을 지켜내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프랑스가 와인을 국가적 자산으로 관리해왔듯, K뷰티 역시 품질과 진정성을 갖춘 브랜드들이 제대로 조명받을 수 있는 산업 차원의 기준과 장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때다. 해외에서 'K뷰티' 이름과 이미지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현상에 대한 대응도 함께 검토돼야 한다.

둘째, K컬처 전체의 유기적 연결이다. K팝, K드라마, K푸드, K뷰티는 이미 세계 시장에서 서로를 상승시키는 관계에 있다. 한국 콘텐츠를 본 해외 팬이 한국 화장품을 찾고, 한국 화장품을 써본 소비자가 한국 음식과 패션에 관심을 갖는다. 이 선순환을 전략적으로 설계하는 'K컬처 통합 브랜딩'의 시각이 확산해야 K뷰티는 단일 산업을 넘어 K컬처 전체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은 이제 뷰티로 세계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단계에 와 있다. K뷰티는 이미 세계가 사랑하는 이름이 되었다. 이제 그 이름을 지켜내고, 더 높은 곳으로 올려놓을 구조를 함께 만들어갈 때다.

최인석 레페리 대표 youngseul.koo@lefe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