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리핀 당국이 최근 발생한 고등학교 총격 사건의 미성년자 피의자가 평소 즐겼던 것으로 알려진 모바일 게임 앱 '고어박스(Gorebox)'의 접속을 잠정 차단했다.
24일 BBC 방송 ·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총격 사건은 지난 22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남동쪽으로 떨어진 타클로반의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했다. 당시 각각 14세와 15세인 청소년 피의자 2명이 교실에서 권총을 난사, 학생 3명이 숨지고 20명이 다친 사건이다.
필리핀 경찰 조사 결과, 총격을 주도한 14세 피의자는 독일 게임사 F2게임즈가 개발한 1인칭 모바일 슈팅(FPS) 게임 '고어박스'의 헤비 유저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게임사는 이 게임의 잔혹성을 강조하며 홍보하고 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 소개란에는 “다양한 무기와 폭발물을 사용하여 잔혹한 전투에 참여하고, 사실적인 래그돌 물리 엔진과 생생한 사지 절단 효과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임”이라고 적혀 있다. 극단적인 폭력성으로 국제연령등급연합(IARC)으로부터 성인이용불가(R18) 등급을 받은 바 있다.
필리핀 사이버범죄수사조정센터(CICC)의 아보이 파라이소 차관은 “이번 비극적인 사건에 온라인 콘텐츠가 미친 부정적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며 “게임 플랫폼이 피의자들의 범행에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철저히 조사하기 위해 해당 게임을 잠정 차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한편, 경찰은 이번 범행이 철저히 계획된 범죄인 것으로 보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두 피의자는 범행 전 화장실에 숨어 대기했던 것으로 확인됐으며, 평소 교내 괴롭힘을 당해 복수심을 품고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범행에 사용된 총기 역시 주변 성인들의 허술한 총기 관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났다. 14세 피의자가 사용한 9mm 권총은 현직 경찰관인 이모의 무기였으며, 해당 경찰관은 사건 직후 직위해제됐다. 15세 피의자가 소지했던 .38구경 권총은 조부가 운영하는 사설 경비업체에 등록된 총기로 확인됐다.
현재 경찰은 15세 피의자에 대해 살인 혐의로 형사 고발을 진행했으나, 주범 격인 14세 피의자는 현지 법령상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 연령에 해당해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필리핀 정치권도 규제 마련에 착수했다. 리사 혼티베로스 상원의원은 “온라인 플랫폼이 청소년들을 급진화하고 세뇌하는 온상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관련 조사를 확대하겠다고 밝혔고, 소니 안가라 교육부 장관 역시 미국식의 모방 범죄가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과학계에서는 폭력성 비디오 게임과 실제 강력 범죄 간의 직접적인 인과관계에 대해 여전히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 이번 게임 차단 조치를 둘러싼 실효성 논란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