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총 4700조원 규모의 반도체·인공지능(AI) 투자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 TSMC의 본거지인 대만에서 경계와 자신감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대만 전문가들은 한국의 초대형 투자가 한·대만 간 첨단 반도체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대만이 오랜 기간 구축한 반도체 생태계와 기술 경쟁력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30일 대만 매체 연합보와 중국시보 등에 따르면 대만경제연구원 류페이전 연구원은 한국의 '3대 메가 프로젝트' 추진으로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경쟁이 한층 격화될 것으로 분석했다.
류 연구원은 “한국의 대규모 투자는 대만이 첨단 공정 기술 개발과 연구개발(R&D)에 더욱 속도를 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그러나 글로벌 반도체 허브로서 대체불가 대만의 위상은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만 폭스콘 출신인 린웨이즈 즈푸산업트렌드연구소 부사장은 한국의 투자 전략에 대해 “AI 산업 성장에 따른 해외 수요를 국내로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한국의 대규모 투자가 부담이 될 가능성도 지적했다. AI 시장 성장세가 둔화할 경우 막대한 설비 투자 비용과 감가상각 부담이 기업 실적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린 부사장은 “2032년 전후 AI 수요 증가세가 꺾이면 한국의 신규 공장과 장비 투자가 회수되기 전에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며 “한국은 내수 시장 규모가 작아 글로벌 수요 감소 충격을 흡수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또 “반도체 경쟁력은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며 “중국도 10년 넘게 투자했지만 아직 대만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대만 전문가들은 한국이 호남권을 중심으로 반도체 생산 거점을 확대하는 배경에 대해서는 수도권의 토지·용수·전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대규모 투자는 높은 고정비 부담을 동반하는 만큼, 향후 반도체 수요 둔화나 공장 가동률 하락이 발생할 경우 이른바 '자본 지출의 함정(Capex Trap)'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은 호남권 반도체 생산거점 구축을 포함한 약 1500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기업들의 장기 투자 계획까지 합치면 전체 규모는 약 4700조원에 달한다.
AI 시대를 맞아 반도체 패권 경쟁이 국가 차원의 경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한국의 공격적인 투자와 대만의 기술 우위 경쟁이 글로벌 반도체 산업 판도를 어떻게 바꿀지 주목된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