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게임 대도약, 지금이 골든타임]〈3〉경쟁력 확대.…전용 투자계정·근로시간 유연화 수면 위로

국내 주요 게임사가 밀집한 판교
국내 주요 게임사가 밀집한 판교

국내 게임산업이 성장 정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구조적 해법 마련이 시급하다. 중소 게임사의 연쇄 폐업과 투자 위축, 개발비 상승이 맞물리며 게임 생태계 전반이 흔들리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게임산업을 단순 콘텐츠 장르가 아닌 국가 전략산업으로 바라보고, 장기 투자 기반과 개발 환경을 동시에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반기 국회와 정부가 논의해야 할 과제로는 △모태펀드 내 게임 전용 계정 신설 △대형 프로젝트 투자 확대 △민간 중심 투자 생태계 조성 △게임 개발 직군의 근로시간 유연화 등이 꼽힌다. 게임 제작비 세액공제가 투자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이라면, 전용 투자계정과 근로시간 유연화는 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제도적 과제다.

◇투자 마른 게임산업... 중소 개발사부터 흔들린다

최근 게임업계 위기는 대형사보다 중소·인디 개발사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게임은 개발에만 최소 3~5년 이상이 걸리고 프로젝트 하나에 수백억원이 투입되는 고위험 산업이다. 그러나 국내 투자 시장은 단기간 회수와 수익성을 중시하는 구조여서 장기 개발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지원하기 어렵다.

여기에 게임 이용률 감소와 시장 성장 둔화, AI·로봇 등 신산업으로의 투자 이동까지 겹치면서 신규 투자도 크게 위축됐다. 최근 몇 년간 국내 게임 스타트업 투자 규모는 큰 폭으로 감소했고, 매출 10억원 이하 영세 게임사 비중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사는 자체 자금으로 버틸 수 있지만 중소 개발사는 프로젝트가 한 번만 지연돼도 회사 존립이 흔들린다”며 “좋은 아이디어와 개발력을 갖추고도 자금 부족으로 개발을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넥슨이 물꼬 튼 게임 IP 펀드... 민간 투자 확산 계기 될까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정부와 넥슨이 함께 조성한 대규모 게임 IP 펀드는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받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넥슨은 최근 총 1200억원 규모의 게임 IP 투자펀드를 결성했다. 정부 정책자금과 민간 대형 게임사가 함께 참여한 역대 최대 규모의 게임 분야 자펀드다. 이번 펀드는 초기 개발사에 대한 시드 투자뿐 아니라 성장 가능성이 검증된 기업에는 후속 투자까지 이어지는 구조를 갖췄다.

무엇보다 의미가 큰 것은 국내 대표 게임사가 산업 생태계 투자에 직접 참여했다는 점이다. 넥슨은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엠바크스튜디오 등 투자와 인수합병(M&A)을 통해 새로운 지식재산(IP)을 발굴하며 성장해왔다. 이번 펀드 역시 이러한 경험을 산업 전체로 확장하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펀드가 모태펀드 내 게임 전용 계정과는 별개의 구조라는 점에도 주목한다. 대형 게임사가 참여한 대규모 자펀드가 투자 마중물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게임산업 특성에 맞는 상시적·전문적 투자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태펀드 내 독립 계정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게임 전용 계정 핵심은 '전문성'

업계가 꾸준히 요구하는 것은 모태펀드 내 게임 전용 계정 신설이다. 현재 게임 투자는 영화, 애니메이션, 웹툰 등과 함께 문화계정 안에서 운용된다. 하지만 게임은 국내 콘텐츠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인데도 투자 배분과 심사 구조는 다른 장르와 함께 묶여 있어 산업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전문가들은 게임 전용 계정의 필요성을 단순한 예산 확대가 아니라 투자 전문성 확보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다.

2026 모태펀드 문화·영화 계정 운용 계획(출처:문화체육관광부)
2026 모태펀드 문화·영화 계정 운용 계획(출처:문화체육관광부)

전성민 가천대 교수는 “문화계정 안에서 게임과 영화, 웹툰 등에 함께 투자하면 심사역이 여러 장르를 동시에 봐야 한다”며 “게임은 영화와 투자 방식이 다르다. 영화는 개봉 후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지만 게임은 라이프사이클이 길고 퍼블리셔 투자, 라이브 서비스, 글로벌 운영까지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게임 전용 계정이 마련되면 게임만 전문적으로 보는 벤처캐피탈리스트와 심사역을 키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 교수는 “게임을 잘 아는 사람이 봐야 새로운 가능성을 알아볼 수 있다”며 “게임 분야 전문성을 가진 투자 심사역을 기르는 것이 게임산업의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게임 전용 계정을 기반으로 초기 창업 펀드와 스케일업 펀드를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도 제안했다. 초기 스타트업에는 창업 자금을,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중견 개발사에는 대규모 성장 자금을 공급해 산업 허리를 두텁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K콘텐츠 수출 목표를 달성하려면 결국 게임이 큰 비중을 맡아야 한다”며 “지금은 콘솔, 서브컬처, 글로벌 IP 등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보이는 시점이다. 다만 큰 회사만 잘되는 구조로는 한계가 있고, 허리 아래 생태계가 튼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자본 선순환 구조 필요”... 스케일업 투자 과제

게임산업 투자 구조의 또 다른 과제는 성장 단계 자금이다. 초기 창업 지원은 일부 존재하지만, 실제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규모의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스케일업 자금은 부족하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특히 중국 게임사와의 체급 차이가 커지면서 중견 개발사가 글로벌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투자 규모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국회 토론회에서도 국내 게임사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초기 창업 지원을 넘어 시리즈B 이후 단계까지 이어지는 스케일업 펀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대형 프로젝트 개발비가 수백억원에서 1000억원 이상으로 커진 만큼, 중견 개발사가 글로벌 시장에 진입하려면 보다 과감한 성장 자금 공급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현재 모태펀드 문화 계정구조와 업계 제안 비교
현재 모태펀드 문화 계정구조와 업계 제안 비교

벤처캐피털 업계에서는 투자보다 회수 시장이 더 큰 병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게임사가 성장해 상장하거나 M&A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민간 자본도 적극적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처럼 상장 문턱이 높고 회수 경로가 제한적인 구조에서는 VC가 장기 개발 프로젝트에 투자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업계 안팎에서는 영화처럼 프로젝트 단위 투자 방식을 게임에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 나온다. 게임별 제작비를 프로젝트 단위로 조달하고, 퍼블리셔와 투자사가 위험을 나눠 부담하는 구조가 정착되면 개발 중단 위험을 줄이고 장기 프로젝트에도 안정적으로 자금을 공급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8년째 제자리인 근로시간 유연화... 경쟁력 과제로 부상

투자 못지않게 업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근로시간 제도 개선이다. 게임업계는 2018년 주52시간제가 시행된 이후 줄곧 개발 직군의 재량근로제 확대를 요구해왔다. 신작 출시나 대규모 업데이트 직전에는 단기간 집중적인 개발과 서비스 대응이 불가피하지만 현행 제도로는 이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현재 재량근로제는 일부 프로그래머 중심으로 적용 범위가 제한돼 있다. 하지만 실제 게임 개발은 기획자, 그래픽 디자이너, 아티스트, 서버 개발자, 운영 인력 등 다양한 직군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출처: 콘텐츠진흥원 2025 게임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출처: 콘텐츠진흥원 2025 게임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업계는 근로시간 유연화가 장시간 노동을 허용하자는 의미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게임은 출시 이후에도 이용자 반응, 서버 장애, 밸런스 조정, 글로벌 서비스 대응이 실시간으로 이어지는 '살아있는 프로덕트'에 가깝다. 일률적인 출퇴근 관리보다 프로젝트 상황에 맞는 집중근무와 휴식, 보상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게임사 관계자는 “게임은 서버가 24시간 운영되는 서비스 산업”이라며 “기계적인 출퇴근보다 프로젝트 상황에 맞게 근무하고 충분한 휴식과 보상을 함께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크런치 부활 우려도... “노사 소통과 안전장치가 전제”

다만 노동계에서는 근로시간 유연화가 과거 '크런치 모드' 부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게임업계가 과거 장시간 노동과 포괄임금제 오남용 문제로 비판받았던 만큼 제도 완화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해법의 출발점으로 노사 소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가장 중요한 접점은 게임사 노조와 경영진 간 소통”이라며 “게임산업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노사가 산업 특성을 놓고 제대로 대화하며 접점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게임 개발을 단순 노동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창작 산업의 특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게임을 문화예술로 끌어올리자는 논의가 이어져 왔는데, 정작 현장에서는 이를 노동 문제로만 바라보는 경향도 있다”며 “게임산업 발전과 창작 생태계 측면에서 근로시간 문제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는 노동자 보호를 약화하자는 뜻이 아니다. 김 교수는 “대형 게임사 노조의 목소리뿐 아니라 인디·소규모 창작 기업의 현실도 함께 들어야 한다”며 “AI 도입으로 업무 방식이 바뀌고 있는 만큼 근로시간, 창작 노동, 기술 변화가 맞물린 새로운 논의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근로시간 유연화는 제도 완화만으로 풀 수 없는 문제다. 집중근무가 필요한 시기와 직군을 명확히 하고, 사전 합의와 휴식권, 보상 체계,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장치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 정부도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니라 현장 특성에 맞춘 세부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

◇30조 시대, 산업 체질 전환이 관건

게임업계는 세액공제와 투자, 노동제도가 각각 별개의 정책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목표를 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개발 초기에는 제작비 세액공제로 투자 부담을 줄이고, 성장 단계에서는 게임 전용 투자계정과 민간 펀드가 자금을 공급하며, 개발 현장에서는 산업 특성에 맞는 근로 제도가 뒷받침돼야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성민 교수는 “한국 게임산업은 저출산·고령화 사회처럼 허리와 밑단이 약해지는 구조적 위기를 겪고 있다”며 “젊고 뛰어난 인재가 계속 들어오고 이들이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수 있도록 투자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게임산업을 K컬처 핵심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남은 과제는 이를 뒷받침할 제도와 투자 환경을 얼마나 빠르게 마련하느냐다.

또 다른 중견 게임사 관계자는 “게임산업은 성공한 한 작품이 수십 년 동안 국가 경쟁력이 되는 대표적인 IP 산업”이라며 “30조원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개별 기업 지원을 넘어 산업 생태계 전체를 성장시키는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정은 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