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이 기존보다 4배 세밀한 500m 해상도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처음 공개했다. 복잡한 산악지형과 해안지역까지 반영한 초고해상도 기후정보를 바탕으로 지자체별 기후위기 적응과 재난 대응 정책의 정밀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후변화가 심화될수록 폭염과 집중호우 등 극한기후는 평균기온이나 강수량보다 훨씬 빠르게 악화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상청 국립기상과학원은 9일 기존 1㎞ 남한 상세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500m 해상도로 고도화한 '500m 고해상도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공개했다. 2100년까지 일평균·최고·최저기온과 강수량 등 4개 기후변수의 미래 전망을 제시한 것으로, 국립기상과학원과 공주대 연구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기후센터가 공동으로 개발했다.
이번 시나리오는 정부간기후변화협의체(IPCC) 제6차 평가보고서의 공통사회경제경로(SSP)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생산됐다. 기존 1㎞ 자료가 유지해 온 미래 변화 추세를 그대로 반영하면서도 우리나라의 복잡한 지형 특성을 더욱 정밀하게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분석 결과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저탄소 시나리오(SSP1-2.6)에서는 21세기 후반 우리나라 평균기온이 현재(2000~2019년)보다 약 2.3℃ 상승하는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기후변화 대응이 미흡한 고탄소 시나리오(SSP3-7.0)에서는 평균기온이 약 5.4℃ 오르고 강수량도 최대 15%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배출이 많을수록 기온과 강수 증가폭도 함께 확대되는 셈이다.
기상청은 평균기온 변화뿐 아니라 폭염과 집중호우 등 극한기후 변화도 함께 분석했다. 전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이 1.5℃ 수준으로 제한될 경우 폭염일수는 현재보다 5.5일 증가하는 데 그치지만, 5℃까지 상승하면 증가 폭은 48.7일로 급증하는 것으로 전망됐다. 일최고기온의 연중 최고값 역시 1.4℃에서 최대 6.2℃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측됐다.
극한강수도 가파르게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온난화가 1.5℃ 수준에 머물 경우 극한호우일수는 0.1일, 1일 최대강수량은 6.4% 증가하지만, 5℃까지 상승하면 극한호우일수는 0.6일, 1일 최대강수량은 30.2%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역별 분석에서는 평균기온과 강수량보다 극한기후의 지역 간 편차가 더욱 크게 확대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동일한 온난화 수준에서도 지역에 따라 폭염과 집중호우 위험이 크게 달라질 수 있어 지방자치단체별 맞춤형 적응정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기상청은 분석했다.
500m 시나리오는 정확성도 개선됐다. 최근 20년간 전국 605개 기상관측소 자료와 비교한 결과 평균기온 편차는 기존 1㎞ 자료의 -0.125℃에서 0.023℃로 줄었고 평균제곱근오차(RMSE)도 0.625℃에서 0.439℃로 감소했다. 강수량 역시 관측값과의 편차와 오차가 모두 줄어 기존보다 실제 기후를 더욱 정밀하게 반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상청은 이번 자료가 산악지역과 연안지역처럼 지형 영향이 큰 지역의 기후변화 영향을 보다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어 지방정부의 기후위기 적응대책과 재난 대응, 국토·도시계획 등 다양한 정책 수립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했다.
500m 해상도 기후변화 시나리오는 기후변화상황지도 누리집을 통해 공개된다. 기상청은 앞으로 상대습도와 풍속, 일사량 등 기후변수를 추가해 서비스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강현석 국립기상과학원장은 “500m 고해상도 기후변화 시나리오는 우리나라 기후위기 적응과 대응체계를 더욱 촘촘하게 뒷받침할 과학적 미래지도”라며 “국민이 체감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후변화 예측정보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겠다”고 말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