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권의 에듀포인트]〈58〉학생의 시간은 공짜가 아니다

신혜권 이티에듀 대표
신혜권 이티에듀 대표

“방학 중에는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제공해도, 학생들을 모집할 수 없어요. 학생들 대부분 아르바이트가 최우선이에요. 아르바이트 시간과 겹치면 학교 프로그램을 신청하지 않아요.”

어느 한 대학 교수 말이다. 방학마다 겪는 현실이다. 취업캠프를 열고, 해커톤을 준비하고, 직무교육 과정을 개설해도 정원을 채우지 못한다. 프로그램 질이 낮아서가 아니다. 학생들이 프로그램에 참가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가져간 것은 아르바이트다.

어느 특정 대학만이 겪는 일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국 대학의 공통 현상이다. 올해 구인구직 플랫폼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학생 10명 중 8명이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답했다. 이유는 생활비와 용돈 마련이 압도적 1위다.

등록금과 주거비, 물가 부담이 커지면서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이미 대학 생활의 기본값이 됐다. 성실하게 일하며 자기 삶을 꾸려가는 학생들에게 아르바이트는 합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선택이다. 충분히 이해되고 공감되는 현실이다.

이 현상의 원인을 학생에서 찾는 것은 번지수가 잘못됐다. 월세와 식비를 당장 감당해야 하는 학생에게 무급으로 진행되는 며칠간의 캠프는 소득 포기를 뜻한다. 중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말은, 당장 돈을 내라는 고지서 앞에서는 너무 멀게 느껴진다. 해법 찾기는 현상을 인정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학생의 시간에 값이 매겨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대학이 먼저 할 일은 세 가지다. 첫째, 프로그램의 시간 구조를 학생의 노동 시간에 맞춰야 한다. 하루 8시간씩 일주일을 통째로 요구하는 합숙형 대신, 하루이틀 내로 종료된는 단기형, 저녁과 주말에 나눠 듣는 모듈형, 온라인 병행형으로 설계를 바꿔야 한다. 일하는 학생과 공존할 수 없는 프로그램은 아무리 좋아도 학생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프로그램과 같다.

둘째, 성과를 숫자로 증명해야 한다.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홍보 문구만으로는 학생을 설득할 수 없다. 지난해 참여자 취업률과 취업처, 초임이 비참여자와 얼마나 달랐는지를 알려줘, 실질적으로 아르바이트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게 더 낫다는 것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 시급 1만원 남짓의 아르바이트 소득과 비교할 수 있는 구체적 수치가 제시될 때 학생은 비로소 뭐가 더 나은지를 생각한다.

셋째, 참여로 잃는 소득을 보전해야 한다. 이미 여러 대학이 비교과 프로그램 참여 실적을 마일리지로 쌓아 장학금으로 돌려주는 제도를 운영한다. 이를 사후 정산형 장학금에서 한 걸음 나아가 참여 기간의 소득을 직접 메워주는 '교육참여수당'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고용노동부의 직업훈련생은 훈련장려금을 받고 재직자는 유급으로 교육을 받는다. 대학생의 역량 개발만 무급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

물론, 대학 재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국가근로장학금을 교내 근로에 한정하지 말고 대학이 인증한 교육 프로그램 참여에도 지급하는 '교육참여형'으로 확장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지난해부터 전국 대학이 시행 중인 지역혁신중심대학지원체계(RISE)를 활용할 수도 있다. 지자체가 참여수당 예산을 편성하고 인재가 필요한 기업이 매칭 방식으로 재원을 보태는 구조도 가능하다.

방학 프로그램의 빈자리는 학생의 무관심을 보여주는 지표가 아니다. 일과 배움 사이에서 매일 저울질해야 하는 학생의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다. 학생의 시간은 공짜가 아니다. 그 시간을 정당한 값에 사들이는 대학과 사회만이 학생에게 배움을 선택할 자유를 돌려줄 수 있다.

학생들이 방학 동안에 아르바이트를 일부 포기하고, 학교의 좋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더라도, 현실에서의 손해 없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날들이 오기 바란다.

신혜권 이티에듀 대표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