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사진진흥법은 20년이나 걸렸습니까?”
사진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한 뒤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 시간을 기다림과 실패의 역사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전혀 다르게 생각한다. 사진진흥법은 늦게 만들어진 법이 아니다. 20년 동안 대한민국 사진이 낙담 속에 가시밭길을 걸으며 충분히 무르익고 성숙했기에 비로소 완성될 수 있었던 법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20년은 법률 한 권을 만들기 위한 시간이 아니었다. 사진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고, 사진을 바라보는 국가와 사회의 시선을 바꾸어 온 시간이었다.
모든 것은 2005년 문화체육관광부를 찾아가면서 시작되었다.
사진진흥을 위한 정책과 사진진흥원 설립 가능성을 논의하기 위해 문을 두드렸지만, 예상하지 못한 현실과 마주했다. 사진을 담당하는 공무원을 찾을 수 없었다. 담당 과장은 여러 부서를 확인했고, 직원들을 일일이 확인한 끝에 시각예술 담당자를 연결했다. 하지만 그 담당자조차 자신이 사진 업무를 맡고 있는지 다시 확인해야 할 정도였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 시대에는 국가 행정체계 안에 '사진'이라는 정책 영역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깨달았다. 사진계가 어려운 이유는 지원사업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사진가가 부족해서도 아니었다. 국가가 사진를 독립적인 정책의 대상으로 바라볼 제도와 법률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담당 공무원이 했던 한마디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기관은 개인이 만들 수 없습니다. 국가가 설립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가가 만들려면 먼저 법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말은 단순한 행정절차가 아니었다. 사진의 미래를 바꾸려면 작품보다 제도가 먼저이고, 제도보다 법이 먼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 첫 번째 전환점이었다. 이후 여러 차례 사진진흥법이 발의되었고, 국회 임기 만료와 정치적 상황 속에서 번번이 폐기된 법안의 신세가 되었다. 당시에는 안타까웠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은 결코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시간 동안 사진도, 세상도, 국가도 함께 성숙했다.
2005년의 사진은 주로 예술과 기록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사진은 전혀 다르다. AI는 사진으로 학습하고, 자율주행은 카메라로 세상을 인식한다. 디지털트윈은 현실을 사진 기반 데이터로 재현하고, 문화유산은 초정밀 이미지로 보존된다. 스마트공장은 비전 AI로 생산을 관리하고, 드론은 국토를 기록하며, 의료와 과학은 이미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발전한다. 사진은 변하지 않았다. 사진을 바라보는 세상의 관점이 변한 것이다. 예술이었던 사진는 문화가 되었고, 문화는 산업으로 확장되었으며, 이제는 AI 시대를 움직이는 핵심 시각정보로 자리 잡았다. 그 변화가 충분히 무르익는데 20년이 필요했다.
많은 사람들은 법안이 여러 차례 폐기된 것을 실패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 시간이 사진진흥법을 더 좋은 법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2015년에 법이 제정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사진진흥법은 아니었을 것이다. AI 대응도 없었을 것이고, 기술개발 지원도 지금처럼 충분히 담기지 못했을 것이다. 실태조사를 통한 국가 통계체계도, 전문인력 양성도, 사진산업 생태계라는 개념도 지금만큼 분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은 법을 늦춘 것이 아니라 법을 성숙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법을 성숙하게 만든 것은 결국 사진였다. 법이 사진를 바꾼 것이 아니라, 사진가 변화하면서 법도 함께 성장한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변화는 국가 정책의 성숙이다. 20년 전만 해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사진는 문화예술의 일부로 인식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진진흥법은 창작 지원에 머물지 않았다. 사진산업 생태계, 전문인력 양성, 기술개발, AI 대응, 지식재산권 보호, 실태조사까지 담아냈다. 이는 매우 큰 정책적 변화다. 문화를 보호하는 정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문화가 미래 기술과 산업을 만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도록 길을 연 것이다.
문화와 산업은 서로 경쟁하는 개념이 아니다. 문화가 산업과 연결될 때 지속가능한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산업은 문화적 가치 위에서 더 큰 경쟁력을 갖게 된다. 이번 사진진흥법은 그 가능성을 제도 안에 담아낸 첫 번째 출발점이다.
지난 20년 동안 성숙한 것은 국가만이 아니었다. 사진계도 함께 성장했다. 사진인들은 제도가 없다고 창작을 멈추지 않았고, 디지털 전환을 외면하지도 않았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디지털에서 AI로 이어지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도 끊임없이 배우고 적응하며 새로운 표현과 기술을 받아들였다. 그 축적이 있었기에 오늘의 사진진흥법도 가능했다. 법이 사진계를 성장시킨 것이 아니라, 성숙한 사진계가 오늘의 법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제 질문은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에는 “사진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이제는 “사진가와 사진기술이 대한민국의 미래에 어떤 가치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사진진흥법이 바꾼 가장 큰 변화다. 사진는 더 이상 지원의 대상이 아니다. 미래를 설계하는 주체다.
지난 20년은 결코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사진가 무르익고, 사진계가 성숙하고, 국가 정책이 사진의 새로운 가치를 이해하게 된 시간이었다. 그래서 사진진흥법은 늦게 탄생한 법이 아니다. 가장 성숙한 시대에, 가장 넓은 의미를 담아 탄생한 법이다. 이제부터 시작될 K-사진 역시 특정한 사진 스타일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진문화와 사진기술, 사진정책과 사진산업이 함께 성장하며 세계가 참고할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 갈 K-사진이다. 20년의 여정은 끝났다. 그러나 이는 굳게 닫혀 있던 정문을 간신히 열었을 뿐 대한민국 사진의 진정한 역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강종진 전 사진산업진흥법제정위원회 위원장 jongje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