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원화를 해외에서도 자유롭게 거래·결제할 수 있는 '자유교환통화(Freely Convertible Currency)'로 전환하는 청사진을 내놨다. 외환시장 24시간 운영과 역외 원화결제망 구축, 외환규제 대폭 완화 등을 통해 원화의 국제적 활용도를 높이는 한편, 디지털 자산과 연계한 차세대 국제결제 체계까지 선점하겠다는 구상이다.
재정경제부는 19일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한국예탁결제원 등 관계기관과 함께 '원화 국제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목표는 원화를 규제통화에서 자유교환통화로 전환해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거래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고, 원화 자본·경상거래 수요와 유동성을 확대하는 것이다. 동시에 외환시장 안정과 거시건전성 관리 등 리스크 관리체계도 함께 구축한다.
정부는 우선 역외 원화거래 인프라 구축에 나선다. 지난 6일부터 시행된 외환시장 24시간 운영을 기반으로 외국인이 해외에서도 자유롭게 원화를 결제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에 '역외원화결제망(가칭)'을 구축한다.
해외 금융기관이 '역외원화결제기관'으로 등록하면 외국인은 국내 계좌를 개설하지 않아도 해외 원화계좌를 통해 예금·송금·결제 등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외국인 간 원화 자본거래에 적용되던 사전신고 의무도 대부분 면제한다.
외환규제도 대폭 완화한다. 외국인 대상 원화대출과 자본거래 신고 기준금액을 2배 이상 상향하고, 장기적으로는 사전신고 중심의 외환관리 체계를 사후보고 체계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복잡하게 운영되던 원화계정도 통합·간소화해 외국인의 원화 사용 편의성을 높인다.
디지털 금융환경에도 대응한다. 정부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에 맞춰 원화 표시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유통 근거를 마련하고, 국경 간 유출입 제도도 정비할 계획이다. 한국은행 기관용 CBDC와 연계한 국채 토큰화 실증사업도 추진하며, BIS 주도의 국제결제 프로젝트인 '아고라(Project Agora)' 참여를 통해 디지털 국제결제 시장에서도 주도권 확보에 나선다.
원화 사용을 늘리기 위한 후속 정책도 병행한다.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을 위한 잔여 과제를 마무리하고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증권시장 접근성을 높인다. 국채와 통화안정증권의 담보 활용 범위를 확대하고, 국제예탁결제기구(ICSD) 내 외국인 간 국채 대차거래도 허용할 방침이다.
무역 분야에서는 원화 결제 기업에 정책금융 금리 우대와 무역보험 한도 확대 등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또 주요 교역국과 현지통화 직거래 체계(LCT)를 확대하고 국가 간 QR 결제 연동, 아시아 다자 지급결제 네트워크(Project Nexus) 참여도 추진해 달러를 거치지 않는 원화 결제 기반을 넓힐 계획이다.
원화 유동성 공급 기반도 강화한다. 외국 금융기관이 야간에도 원화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도록 민간 유동성 공급체계를 구축하고, 필요 시 정부와 한국은행이 유동성을 공급하는 백스톱 역할을 검토한다.
외국계 금융기관의 원화 차입 규제를 완화하고 국내 은행의 커스터디 업무를 제도화해 외국인 투자자를 위한 원화 서비스도 확대한다. 통화스왑 자금을 활용한 무역금융과 방산·원전 등 해외 정부 계약에서 원화 계약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정부는 “원화 국제화가 자본시장 발전과 기업의 환전·환헤지 비용 절감, 외환시장 안정성 제고 등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다만 글로벌 금융시장과의 연계 강화에 따른 변동성 확대 가능성도 있는 만큼 외환시장 안정화 정책과 외환건전성 관리체계를 함께 고도화하겠다”고 말했다
손지혜 기자 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