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은 기대 이하의 성과를 보였고, 많은 사람이 큰 실망감을 표했다. 이에 반해 20여년 전 함께 한일 공동월드컵을 개최했던, 일종의 경쟁 관계를 형성했던 일본 대표팀은 최근 발전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2002년에 우리는 축구 분야에서 우리가 일본보다 우위라고 생각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디에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
많은 사람이 유소년 축구 시스템의 차이를 이유로 꼽는다. 한국 축구가 손흥민이나 이강인 같은 압도적인 스타를 키워냈음에도 다수의 저변을 형성하지 못함으로 인해 고전했다. 반면에 일본의 경우 유소년 축구 인프라를 바탕으로 100명이 넘는 유럽리그 선수를 양성하는 등 굳건한 집단 경쟁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차이를 우리는 한일 월드컵 당시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20년 전부터 일각에서 지속해서 문제 제기가 되어왔음에도 어떤 이유에선지 우리는 소수의 스타플레이어에 집중했고, 일본은 저변을 키웠다.
문제는 이런 현실이 비단 축구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의 경제 상황과 대외경쟁력은 일견 역대 최고치의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누가 봐도 이 성취는 몇몇 업종, 몇몇 기업의 압도적인 스타플레이에 기대고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런 구조는 언젠가 한계에 다다르게 된다.
영국에서 인공지능(AI) 신뢰성·보증 분야 전문인력 수가 1만2000명을 넘겼다는 소식이 들린다. 핀란드는 10여개 대학이 체계적 과정을 만들어 신뢰성 전문인력을 육성 중이다. AI가 산업을 돕는 기술에서 산업 자체를 움직이는 기반으로 바뀌고 있는 지금, 몇몇 국가는 화려하게 부각하지 않더라도 저변의 근간이 되는 영역에 꾸준히 철심을 박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해당 분야에 전문 교육체계도, 직무별 경로도 제대로 구성돼 있지 않다. 더욱 먼 시야로 산업의 20년 미래를 위해 기초체력을 육성하는 일에 소홀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지금 산업이 시급히 필요로 하고, 그래서 유럽의 나라들이 서둘러 양성 중인 전문인력은 AI를 개발하는 사람이 아니다. AI를 사회가 수용하고 사용할 수 있게끔 만드는 사람이다. 아무리 고성능으로 개발된 AI라도 언제든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고, AI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 결과가 치명적일 수 있다. 그렇기에, 가능한 돌발 상황에 대해 지속적 평가, 중단, 롤백, 재개, 초기화, 인적 개입 등 선택이 시스템 내에서 신속 정확히 이뤄지도록 설계돼야 하고, 그 모든 의사결정이 추적·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설계는 개발자가 전담할 수 없기에 해당 영역의 전문가가 필요하고, 광범위한 영역에서 다양한 변수를 다루기 때문에 소수의 천재가 아닌 다수의 숙련인력이 준비돼야 한다. 재계약 연봉의 액수가 대서특필되는 스타플레이어는 아니지만, AI 산업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필요한 진짜 주역들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AI 개발 경쟁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그 방법이 먼저 화려한 외형을 갖춘 후 내실은 나중에 채우면 된다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개발이 완전히 끝난 뒤 신뢰성을 맞추려면 재설비와 운영체계 정비 탓에 일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자칫하면 해외의 예기치 않은 규제 폭탄에 뒤늦게 직면할 수도 있다.
기술의 저변을 채우는 일은 밑그림 후에 천천히 채워도 되는 디테일이 아니라, 건물을 더 놓고 튼튼히 올리기 위한 기초 지반공사에 가깝다. 지금 이 산업에 필요한 것은 한 명의 화려한 스타 외에도, 100명의 전문가를 키울 수 있는 안정된 인프라다. 그것을 만들어내는 일이야말로 AI 산업의 20년 후를 지금 준비하는 길이며, 한두 명의 스타플레이어만으로는 큰 시합에서 이길 수 없음을 보여준 2026년 월드컵으로부터 우리가 얻어야만 할 교훈이다.
박지환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 초거대AI추진협의회원·씽크포비엘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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