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일하는 시대, 음성 AI 에이전트가 온다

음성 AI 에이전트 서비스 이미지.
음성 AI 에이전트 서비스 이미지.

AI가 단순히 묻고 답하는 도구를 넘어 스스로 업무를 수행하는 자율적 동료로 진화하고 있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음성이 있다. 키보드와 터치를 대신해 사람이 AI와 일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인터페이스로 음성이 빠르게 부상하면서, 음성 AI 에이전트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음성을 AI가 닿지 않은 마지막 미개척 영역으로 본다. 문서와 데이터는 오래전부터 디지털화돼 검색·분석·자동화의 대상이 됐지만, 회의·강의·상담·고객 응대 등 업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음성은 여전히 기록되지 못한 채 흩어져 사라져 왔다. 디지털화되지 않고 남아 있던 이 거대한 영역이 음성 AI 기술로 비로소 데이터로 전환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음성 AI 에이전트는 그만큼 큰 기회로 평가된다.

시장 전망도 이를 뒷받침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2028년까지 기업용 소프트웨어의 33% 이상에 에이전트형 AI가 탑재되고, 일상 업무 결정의 15%가 자율 AI 에이전트에 의해 수행될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어스는 글로벌 음성 AI 에이전트 시장이 2024년 24억 달러에서 2034년 475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인터페이스의 무게중심도 음성으로 옮겨가고 있다. 구글은 연례 개발자 컨퍼런스 I/O 2026에서 창사 이래 25년 만에 검색창을 전면 개편하며 키워드 중심에서 대화·음성·멀티모달 입력으로 확장했다. 또한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실리콘밸리 업무 현장에서도 키보드 입력을 줄이고 AI에게 말하며 일하는 방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음성이 핵심 인터페이스로 떠오르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각자의 강점을 살려 음성 AI 에이전트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대기업 진영은 이미 확보한 플랫폼과 하드웨어, 대규모 사용자 접점 위에 음성 AI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접근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글로벌 소프트웨어 센터 포티투닷은 대규모 언어모델 기반 차량용 음성 AI 에이전트 '글레오 AI'를 선보였다. 글레오 AI는 사전에 등록된 명령어를 정확히 말해야 작동하던 기존 차량용 음성 비서와 달리, 이전 대화와 주행 상황까지 연속적으로 파악해 사용자의 의도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특징이다. 내비게이션 설정, 공조 제어, 차량 기능 조작 등을 하나의 대화 흐름 안에서 처리하며, 발화자의 좌석 위치나 차량 상태에 따라 다른 작업을 수행하기도 한다.

기술 구조 면에서는 저지연과 안정성이 필요한 작업은 온디바이스에서, 고성능 연산이 필요한 작업은 클라우드에서 처리하는 하이브리드 아키텍처를 채택했다. 음성 전처리·인식·합성 기술을 자체 개발해 변수가 많은 차량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품질을 유지하며, '가드레일 에이전트'로 위험 발화를 사전에 차단해 안전성을 확보했다. 글레오 AI는 현대자동차 '더 뉴 그랜저'에 처음 탑재되며, 완성차라는 하드웨어 접점을 기반으로 글로벌 차량용 음성 AI 경쟁에 본격 합류했다.

카카오는 행정안전부와 함께 카카오톡 기반 'AI 국민비서'에 음성 인식 기능을 도입했다. 이용자가 “주민등록등본 발급해줘”, “테니스장 예약해줘”처럼 일상 언어로 음성 명령을 내리면 AI가 의도를 파악해 즉시 서비스를 실행한다. 현재 전자증명서 100여 종 발급과 공공시설 1200여 개 예약을 지원한다.

이 서비스의 핵심은 음성이 진입 장벽을 낮춘다는 점이다. 스마트폰 자판 입력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등 디지털 취약계층도 말 한마디로 행정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톡을 채널로 활용해 별도 앱 설치 없이 접근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민감한 개인정보를 다루는 만큼 카카오는 자체 AI 보안 기술 '카나나 세이프가드'를 적용했으며, 음성이 진입 장벽을 허무는 디지털 포용의 대표 사례로 자리 잡고 있다.

스타트업 진영은 빅테크가 파고들지 않은 틈새와 자체 기술력으로 정확도·전문성에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검증된 B2C 서비스를 발판으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비즈니스 워크플로우 특화 AI 기업 액션파워의 올인원 AI 노트테이커 '다글로'는 시장에서 검증된 대표적인 음성 AI 서비스다. 다글로는 누적 가입자 200만 명을 확보했으며, 작년 한 해에만 1300만 시간 분량의 음성을 텍스트로 처리했다. 이미 대규모 사용자 기반과 운영 역량을 입증한 서비스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다글로는 단순 녹음 받아쓰기를 넘어 기록과 이해를 토대로 실행까지 연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음성뿐 아니라 PDF 등 파일과 유튜브 링크를 업로드하면 AI 채팅을 통해 보고서와 기획안 같은 후속 결과물까지 만들 수 있다. 특히 '보드챗' 기능은 음성·PDF·문서 등 본인 자료를 기반으로 대화하며, 파일 재업로드 없이 요약·정리·기획·문서 작성을 이어갈 수 있게 한다. 자체 개발 음성인식 엔진으로 약 95%의 인식 정확도를 구현하고, 한국어를 포함한 14개 언어를 지원한다. 22가지 AI 템플릿 기반 문서 자동화와 9종의 글로벌 LLM 통합 지원도 제공한다. 업무 특화 LLM 'ELLI(엘리)'와 개인 데이터 기반 워크플로우 자동화가 핵심 경쟁력이다.

다글로는 회의와 강의 등이 잦은 직장인 및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B2C 시장과 함께, 금융·공공·의료 분야의 B2B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고 있다. 특히 보안이 중요한 산업에서는 온프레미스 솔루션을 공급하고 있다. 데이터가 외부 클라우드를 거치지 않고 기업 내부 폐쇄망에서 처리되기 때문에, 민감 정보의 외부 유출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이를 바탕으로 DB생명, 한글과컴퓨터, 서울대병원, KT스카이라이프 등 다양한 산업군의 고객사를 확보했다.

네오사피엔스는 음성을 듣는 영역이 아닌 말하는 영역에서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대표 서비스 AI 음성 합성(TTS) 플랫폼 '타입캐스트'는 전 세계 220여 개국에서 280만 명 이상의 크리에이터와 기업 고객이 활용하는 검증된 B2C 서비스로, 최근 3년간 매출이 매년 65%씩 성장했다. 텍스트를 입력하면 콘텐츠에 쓸 음성을 즉시 만들 수 있어 콘텐츠의 진입장벽을 낮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핵심 경쟁력은 자체 개발한 음성 생성 파운데이션 모델 'SSFM'이다. 약 120만 시간 규모의 음성 데이터를 학습해,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 수준을 넘어 문맥에 맞는 감정과 톤 등 발성 스타일을 정교하게 제어한다. 700여 개의 AI 음성 캐릭터를 제공하며, 빅테크 범용 모델이 놓치는 미묘한 감정과 문화적 뉘앙스까지 표현한다. 음성 합성 기술 자체가 평준화되는 흐름 속에서, 감정과 캐릭터의 맥락이라는 상위 영역을 자체 모델로 정조준한 것이다. 네오사피엔스는 이를 기반으로 콘텐츠 제작을 넘어 대화형 AI 에이전트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음성 AI 에이전트 시장은 대기업과 스타트업이라는 두 진영에서 동시에 확장되고 있다. 대기업은 플랫폼과 하드웨어 위에 음성 AI를 얹어 기존 접점을 확장하고, 스타트업은 검증된 B2C 서비스와 특화 기술력을 발판으로 틈새 시장을 정조준한다.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음성을 단순한 입력·출력 수단이 아니라 사람과 AI를 잇는 핵심 인터페이스로 본다는 점은 같다.

업계에서는 음성이 표준 인터페이스로 자리 잡을수록, 한국어와 산업 특성에 최적화된 음성 AI 역량을 갖춘 기업이 시장을 선점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